[김진석의 걷다보면] ‘후회’라는 굴레를 벗어버린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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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 4회

고산 적응을 위해 오늘 하루는 이곳 ‘남체’에서 머물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낮은 지대의 사람들이 고산 지대로 올라오면 신체에 무리가 생긴다. 보통은 두통과 고열 등의 증상인데 딱히 치료방법이 없다. 산에서 내려가거나 산에 적응을 하는 수밖에.

내 상태가 계속 좋지 않다. 얼굴은 붓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며칠 계속 되고 있다. 하루에 두통약을 6알 이상 먹으며 버티고 있다.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 머리를 도끼로 치는 듯한 통증’이다.

아침부터 침낭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 걱정스런 얼굴로 심산 작가가 나를 산 밑으로 내려보내는 것을 고려한다. 심 작가의 입장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일행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오늘은 숙소에서 쉬고 내일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몸을 일으켜 카메라를 손에 쥐고 밖으로 나갔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에 오는 것은 인생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그리고 난 아직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보지 못했다. 꿈속에 나왔던 곳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모습을 이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다.

일행이 이미 모두 나와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를 쳐다보는 걱정스런 표정이 보인다. 괜찮은 척하고 조금 머뭇거리다 일행 뒤를 따라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한 짓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속에서 후회할 거 같으면 무조건 하고 본다는 것이 길을 걸으며 느끼고 배운 것이다.

한번은 카미노를 걷다가 너무 힘들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이 ‘후회할 거 같다’였다. 고민하고 망설이다 결국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다. 그 순간을 이겨내지 못하고 버스를 탔더라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평생 ‘후회’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가는 곳은 히말라야 산맥이 한눈에 보이는 뷰 포인트다. 에베레스트 호텔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일본 산악인이 지었다고 한다. 멋들어지게 지어진 건물. 멀리 히말라야 산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당이다.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테라스에 서니 에베레스트와 주변 고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다. 에베레스트, 로체, 눕체, 아마다블람까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아직 멀게만 느껴지지만 펼쳐진 풍경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만년설로 덮어져 있는 하얀 산.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맞대고 있는 산.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보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충만함이 든다. 벅찬 감동을 진정하고 카메라를 들어 그 멋진 풍경을 담았다. 사진을 찍고 액정을 확인하니 성에 차지 않는다. 하긴 이 풍경을 아무리 잘 표현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이미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오전 내내 나를 누르고 있던 두통마저 말끔히 사라졌다. 그 어떤 약보다 효과가 있다. 만약 아침에 침낭 속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난 이 기분을 평생 알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 나중에 누군가의 사진을 보거나 이야기를 들었다면 난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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