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인감 만들고 사업계획서 써내고 ‘외국인 창업비자’ 1호 벨치얀의 분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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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서류 작성과 신고절차 때문에 고생했어요. 그래도 한국은 세계적인 창업국가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국내 ‘외국인 창업비자’ 1호 안드레이 벨치얀(27·슬로베니아·사진)이 내린 한국 벤처 생태계에 대한 평가다. 그는 2013년 영국인 사이먼 챈(30)과 함께 국내 동포·외국인을 위한 구인·구직 사이트 ‘잡시커’를 창업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벨치얀),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오면서 한국에 애정이 생겼다”(챈) 등의 이유였다.

 국내에서의 창업은 만만치 않았다. 당장 법인 설립을 위한 인감을 만드는 데서 길이 막혔다. 벨치얀은 “안드레이 벨치얀(Andrej Belcijan)을 영어식 표기대로 ‘안드레지 벨치잔’으로 등록해야 한다고 해 난감했다”면서 “실제로 ‘j’ 발음이 ‘ㅈ’으로 소리나는 것은 영어나 그렇지 유럽어는 대부분 ‘ㅡ’ 발음이 난다는 점을 설득하는 데 몇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비자 역시 쉽지 않은 문제였다. 어학연수생으로 입국한 벨치얀은 연수기간이 끝난 이후에는 비자를 재발급받기 위해 90일마다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지난해 8월 법무부·중소기업청이 처음으로 시행한 ‘외국인 창업비자’를 받으면서 장벽이 사라졌다.

 법인을 세우고 비자 문제를 해결했지만 아직 사업을 키우기까지는 먼 길을 가야했다. 당장 잡시커는 ‘직업정보제공사업’으로 분류돼 법인 설립 외에도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해야 했다. 신고서에 ▶직업정보를 제공하는 주된 대상 ▶직업정보 직종 ▶홈페이지 등 정보 제공 수단 등을 명시해야 하는 것은 물론 수입·지출 등 예산 계획이 포함돼 있는 사업계획서까지 첨부해야 한다. 챈은 “갓 창업한 스타트업 기업에 사업계획을 짜서 내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그래도 잡시커가 외국인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현재 ‘서울글로벌센터’에서 사업 공간을 지원받고, 창업진흥원에서 투자받은 4000만원을 종잣돈 삼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에인절 투자자를 만나 투자 협상도 진행 중이다.

 벨치얀은 “한국의 역동적인 벤처 문화 덕분에 우리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심재우(팀장)·구희령·손해용·박수련·이소아·이현택 기자,
사진=신인섭·오종택·강정현 기자, 정수경 인턴기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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