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球와 함께한 60年] (51) 김성한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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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경성고무에 근무하던 시절,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군산지역 중.고교 운동장을 찾아 야구부의 훈련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나는 경성고무 공장과 사무실에서 일을 마치고 나면 머리도 식힐 겸 오후에는 인근 군산상고나 군산중.군산남중에 들러 어린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눈여겨보곤 했다.

1974년 4월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군산중 교정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나는 단연 눈에 띄는 선수 한 명을 발견했다. 그는 당당한 체격에다 달리기는 물론 타격.수비.피칭까지 모든 면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누군가가 "김성한이라는 선수인데, 지난 겨울 김용남이 군산상고로 진학한 뒤 군산중에서 투수 또는 유격수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부터 김성한의 훈련 모습을 눈여겨 봤다.

그런데 내가 그의 훈련을 지켜볼 때면 꼭 운동장 한쪽 나무의자에 앉아 나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 한 분이 계셨다. 처음에는 그저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 교사 가운데 한분이려니 했으나 갈 때마다 마주치게 되자 그 사연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군산중 감독에게 물었더니 "그분은 이준원 교감 선생님입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김성한을 자기 집에 데리고 살면서 아침에 같이 등교하고 수업이 끝나면 훈련을 지켜보다가 같이 집에 갑니다.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입니다. 성한이도 교감 선생님 댁에서 지낸 뒤부터 몸도 좋아졌고 성격도 활발해졌습니다. 야구도 열심히 해 기량이 부쩍 늘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준원 교감은 신실한 교육자였다. 그는 나중에 내가 군산야구의 후견인이라는 것도 알게 됐지만 내 앞에서 자신이 김성한을 돌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주위에 자신의 선행을 늘어놓지 않는 성격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다른 교사를 통해 "김성한은 성격이 거칠다. 혹시라도 3학년 때 탈선하면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최관수 군산상고 감독이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준원 교감 선생님이 김성한을 직접 보살피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김성한은 그렇게 이준원 교감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군산상고에 진학했다.

'의리의 사나이' 김성한은 자신을 돌봐준 은사를 잊지 않았다. 김성한은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동국대.해태를 거치면서 명절 때마다 선물을 잔뜩 갖고 이준원 교감 댁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92년 돌아가실 때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군산상고 야구부 출신들에게 '김성한은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의리있는 친구'라는 얘기가 퍼졌다.

기아 타이거즈 감독 자리에까지 올라선 김성한은 자신이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기 때문에 남을 위해 베풀 줄도 안다. 후배들에게는 따뜻한 선배이며, 선배들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후배다. 이러한 그의 성품은 그가 지도자로서 성공해 장차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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