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수용 외무상 "조급해하지 마시라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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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북한 이수용 외무상이 5일 취재진에게 입을 열었다.

이 외무상은 이날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월드트레이드센터(PWTC)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의 양자회담을 끝낸 뒤 취재진에게 “시간도 많고 할 일도 많은데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우”라고 말했다. “한국과 만날 계획이 있느냐”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엘레베이터에 탄 뒤 돌아서며 한 말이다.

이 외무상은 전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취재진을 따돌리는 등 언론의 관심을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호텔에서도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을 피해 호텔 정문이 아닌 별도의 출입구를 통해 들어갔다.

하지만 회의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5일부터 이 외무상과 북한 대표단은 다른 태도를 보였다. 이 외무상은 오전 파키스탄과 40분 동안의 양자회담을 끝낸 뒤 기자들과 마주쳤다. 질문에 답을 하진 않았지만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해 한말씀 해달라”라고 하자 미소를 지어보이는 등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전날 공항에서와 달리 취재진의 접근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북한 대표단 중 한 사람은 “추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무상의 발언까지 종합해보면 회의가 계속되는 5~6일 사이 돌발 기자회견을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측된다. 또 다른 북측 관계자도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 부정을 하지 않았다.

북한측은 이번 ARF 의장성명에서 한반도 관련 조항에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애쓰는 분위기다. 이 외무상과 동행한 이동일 전 북한 유엔 뉴욕대표부 차석대사(국제기구국 부국장으로 추정)도 이른 시간부터 회의장을 찾아 의장성명 초안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ARF 의장성명은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 교도통신은 의장성명 초안에 북한 인권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오전 이뤄진 한-아세안 외교장관회담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전보다 훨씬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윤병세 장관이 이란핵협상 타결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등 최근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 입장을 밝혔고 이어 아세안 국가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밝혔는데, 지금의 상황이 누구의 잘못인지에 대해 정확힌 인식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아세안 국가들은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준수하고, 9·19 공동성명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밝혔고 어떤 국가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향후 도발 등을 우려하는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쿠알라룸푸르=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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