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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열병식 초대, 부담스러운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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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

마오쩌둥(毛澤東)만이 누린 특권이 있었다. 천안문 성루에서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면서 손을 흔드는 특권이었다.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류사오치(劉少奇), 가오강(高崗) 등 신중국 개국공신들이 함께 도열했지만 그들은 손을 흔들 수 없었다. 그저 마오 옆에서 박수를 칠 수 있었을 뿐이다. 작가 위화(余華)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그려낸, 영수(領袖)와 영수 아닌 자의 차이였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고 설파했던 마오는 1949~59년 사이 매년 천안문 열병식을 거행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그는 천안문 성루에 올라섰다. 인민해방군을 사열하는 대신 10대 홍위병들에게 손을 흔든 게 다른 점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천안문 열병식을 부활시킨 건 84년이었다. 마오의 후계자로 낙점된 화궈펑(華國鋒)을 실각시키고 천윈(陳雲) 등 보수파들과의 노선투쟁에서 이겨 1인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굳힌 뒤였다. 열병식은 덩 체제의 완성을 선언하는 화룡점정의 의식이었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각각 신중국 건국 50주년과 60주년 기념 열병식을 거행했다. 중국의 권력 승계가 제도화된 것에 발맞춰 열병식 개최 주기에도 관행이 생겨났다. 이 관행을 따르자면 건국 70주년(2019년)까지 기다려야 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집권 3년이 채 안 되는 올 9월 3일에 대대적인 열병식을 거행키로 했다. 군부를 포함한 전방위 권력 장악이 3년 만에 끝났다는 방증이다.

 주목해야 할 건 항일전쟁과 반파시스트 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이란 명분이다. 바로 이 명분에 기대 시 주석은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열병식에 초대했다. 국내 행사에 머물렀던 전례와 달리 시 주석의 열병식이 국제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필자가 알기론, 외국인이 천안문 사열식에 선 건 마오와 각별한 관계였던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유일하다.

 인류의 공적 파시스트를 굴복시킨 승전을 함께 축하하자는 명분에 누가 반대하랴. 하지만 현실 세계의 작동원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열병식 참석 여부가 중국과의 친밀도, 반대로 미국과의 거리를 재는 척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시각 박근혜 대통령의 고심은 누구보다도 클 것이다. 한·중 관계가 역대 최상이라고 치켜세워 왔고 시 주석과의 개인적 신뢰를 강조해온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간단히 거절하기 힘든 문제다. 중국이 박 대통령 초대에 들이는 공도 여간이 아닌 듯하다. 우리 정부가 내심 바라는 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결정 때처럼 다른 나라들이 먼저 손들고 나서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번엔 좀처럼 그럴 기미가 없다. 만약 열병식 당일 서방 주요국 지도자로선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천안문 성루에 설 경우 세계에 어떤 메시지로 비춰질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갈수록 선택을 강요당하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 외교장관의 말처럼 러브콜임엔 틀림이 없지만 받는 입장에선 정말 부담스러운 러브콜이 아닐 수 없다.

예영준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