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원형은 신사쿠가 주도한 사쿠라야마 초혼 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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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야마 신사의 독특한 풍광. 가운데가 요시다 쇼인 신령비. [사진 박보균 대기자]
도쿄의 야스쿠니 입구에 서 있는 거대한 오무라 마스지로 동상. [사진 박보균 대기자]

야스쿠니(靖國) 신사는 은밀하다. 탄생의 비밀 속에 다카스기 신사쿠가 존재한다. 신사쿠의 회천 동력은 ‘초망굴기’다. 역사 전진에 평민의 동참이다. 그는 그 외침을 죽음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죽어서 다 같이 신이 된다.”-신령(神靈)의 집단화, 평등화다. 여기에 초혼(招魂)의 개념을 넣었다. 진자(神社)의 개념은 진화한다.

 1865년 8월 조슈 번(지금 야마구치현)은 숨진 기병대원의 제사 장소를 지었다. 사쿠라야마 초혼(櫻山 招魂) 신사다. 신사쿠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그곳은 시모노세키 역전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초혼제는 죽은 자의 넋을 신령으로 바꾸는 의식이다.

 사쿠라야마 신사는 독특하다. 391개의 작은 비석(신령비)이 서 있다. 높이가 같다. 맨 앞 가운데가 요시다 쇼인이다. 그의 신령비만 약간 높다. 그 양쪽에 수제자(쌍벽)인 신사쿠와 구사카 겐스이(久坂玄瑞) 비석이 있다. 신사 안내문은 이런 의미를 부여한다. “위대한 지도자 쇼인부터 이름 없는 기병대원까지 정연하게 늘어선 영표(靈標)의 모습은 신분제를 초월하는 새 시대의 이념을 전한다.”

 1869년 8월 도쿄(지요타 구)에 초혼사가 건립됐다. 주도자는 일본 육군의 창시자 오무라 마스지로(大村益次郞). 그의 고향은 조슈. 첫 궁사(宮司)도 조슈 출신 아오야마 기요시(靑山淸). 도쿄 초혼사는 쇼인과 신사쿠 신령 합사(合祀)로 시작했다. 도쿄 초혼사는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을 바꾼다(1879년).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조슈 번 사쿠라야마 초혼장은 야스쿠니 신사의 원형”이라고 했다. 신사쿠 삶은 캘수록 기묘해진다. 야스쿠니의 비밀 장막이 조금씩 걷힌다.

 야스쿠니 신사 홈페이지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다카스기 신사쿠 등 저명한 막말(幕末)의 지사, 일청전쟁, 일로전쟁, 만주사변, 대동아 전쟁 등에서 국가방위를 위해 돌아가신 신령을 모시고 있다”. 1978년 야스쿠니는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합사했다. 그들 중 도조 히데키(東條英機)는 개전 때 총리 겸 육군대신이다.

 2013년 12월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다. 아베의 역사 퇴행이다. 그는 “일본을 위해 귀중한 생명을 희생한 영령들에게 존숭의 뜻을 표했다”고 했다. 그의 과거사 행적에 쇼인과 신사쿠가 존재한다.

◆요시다 쇼인(1830~1859)=메이지 유신의 정신적 지주다. 조슈 번의 도읍지 하기 출신. 1853년 일본의 대란이 시작됐다. 미국 페리 함대의 출현 때문이다. 쇼인은 천하평정의 파격적 이론을 생산했다. 핵심은 ‘일군만민’. 천황체제로의 통치일원화다. 20대 중반 그는 글방을 열었다. 하기의 쇼카손주쿠(松下村塾)다. 그는 제자의 신분을 따지지 않았다. 글방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을 쏟아냈다.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문하생이다. 모두 총리를 지냈다. 둘은 하급 사무라이 출신이다. <쇼인을 찾아서. 본지 2014년 1월 18일자 박보균 대기자> 막부는 그를 처형한다(29세).

 쇼인의 존왕과 정한론은 악성 결합한다. 조슈 번 후학들은 한반도를 유린했다. 그의 사상은 제국 일본의 국수(國粹)·군국주의와 체제 우월감의 기반이 된다. 그것은 1945년 패전까지 나라의 틀로 작동했다. 오늘의 일본 우익세력은 쇼인을 복귀시키고 있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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