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美불신 우려"… 청와대 해명 곤욕

중앙일보

입력

노무현(盧武鉉.얼굴)대통령이 방일(訪日)외교 때 북핵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면서 "대화 이외의 방법을 거부한다는 시사를 했다"고 한 10일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청와대는 곧바로 대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한.미.일 입장차를 드러낸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야당은 "말바꾸기" "한.미.일 공조를 해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3국 정상합의와 달라"=盧대통령의 발언은 5.14 한.미 정상회담과 5.23 일.미 정상회담, 그리고 6.7 한.일 정상회담 합의내용과 거리가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당시 회담에선 북핵 문제를 한.미.일 공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과, 해결되지 않을 경우 '추가적 조치'(한.미 정상회담), '보다 강경한 조치'(미.일 정상회담)가 있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한.미, 일.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원칙을 재확인한다"고 했다. 盧대통령 스스로도 방일 중인 지난 8일 재일동포 간담회에서 "압력의 수단이 있을 수 있음을 폐기하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물론 당시에도 "북한의 선택과 행동이 아주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그 다음의 행동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암시를 한 수준"이라며 대화 쪽에 무게를 뒀다.

하지만 이날 발언은 한발 더 나아가 대화 이외의 압력수단을 부인하는 내용이다. 미.일 양국의 입장에서 보면 정상간 합의를 번복한 꼴이다.

발언이 전해지고 파문이 일자 청와대 윤태영(尹太瀛)대변인은 "'대화 이외는 거부' 부분은 확대된 것 같다"며 "대화 이외의 방법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시사했다고 언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부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외교 불신 초래할 것"=정치권에선 이를 盧대통령의 '말바꾸기'로 보고 국제적 불신을 초래하고 심할 경우 한국이 북핵 해결과정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의원은 "(盧대통령이)미국에서 추가적 조치를 합의해 놓고 일본에서 딴소리를 한다면 한국을 신뢰하겠는가"라며 "3국간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미국은 자기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웅규(曺雄奎)의원은 "밖에서와 국내에서의 얘기가 달라선 불신만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박진(朴振)의원은 "盧대통령은 미국에서 '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선택에 두려움을 갖는 게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며 "하지만 일본에서 대화 이외를 거부했다면 이는 정상간 합의를 정면으로 뒤집은 것 아니냐. 더 나아가 일본과의 회담이 결렬됐다는 얘기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정상간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전하는 것은 외교적 결례"라고도 했다.

민주당 함승희(咸承熙)의원도 "동맹국들이 '역시 말뿐이었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의 원칙"이라고 꼬집었다. "불신을 자아내 미국 내 강경파가 득세할 수 있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