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이 키운 린치, 힐러리 대선 앞길 좌우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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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타 린치

개인 e메일을 통한 기밀 누설 의혹을 받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67)의 차기 대선 생명줄은 공교롭게도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연방 검사장으로 발탁했던 미 최초의 흑인 여성 법무장관 로레타 린치(56)가 쥐게 됐다.

 클린턴의 e메일을 검토한 정보기관 감찰관 2명이 “3만여 개에 달하는 클린턴의 e메일 가운데 국무부에서 제공한 40여개의 견본 e메일을 검토하니 ‘기밀’로 다뤘어야 할 것이 적어도 4건 있었다”고 결론지으며 법무부에 정식으로 ‘조사’를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서다. 일단 미 법무부는 “범죄 혐의 조사에 대한 의뢰는 아니며 ‘기밀 정보를 부주의하게 다뤘을 가능성’에 대한 조사 의뢰”라는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린치 법무장관은 26일(현지시간) ABC방송에 출연, “조사 의뢰된 내용을 검토해 (문제가 있을 경우) 우리가 취해야 할 특별한 조치가 뭔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이제 린치 장관과 법무부가 (클린턴의) ‘범죄 수사’를 포함해 어떻게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고 보도했다. 린치 장관이 클린턴에 대해 사실상의 범죄 수사에 상응하는 조사에 착수할 경우 내년 대선의 유력 주자인 클린턴은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린치 장관은 클린턴 부부와는 인연이 깊다. 흑인 노예의 후손인 린치는 주로 클린턴의 정치적 기반인 뉴욕주에서 30년 가량 검사 생활을 했다. 1997년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구타사건이 큰 인종차별 문제로 번질 뻔 했으나 린치가 법치 원리에 따라 중립적으로 깔끔히 마무리 지으며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눈에 들었다.

 린치는 26일 ABC방송에서 “클린턴 부부와의 관계 때문에 (업무 수행에) 갈등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공화당은 “린치 장관이 클린턴 전 장관 조사에 소극적”이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공화당 경선 후보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이날 폭스뉴스에 나와 “법무부가 민주당 전국위원회 하부조직처럼 행동하며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고 견제했다.

 그러나 검사 시절 테러 용의자와 폭력배들에 대해 가차없는 법 적용을 하고 정파적 이해에 쏠리지 않는 강단을 보여 온 린치 장관이 어느 한 편에 서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편견과 줄곧 싸워 온 경력 때문이기도 하다. 린치 장관은 장관 취임 한 달 만인 지난 5월 말 ‘국제축구연맹(FIFA)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유명해졌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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