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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섹스’가 ‘배달의 민족’ 낳았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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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아이디어 섹스’.

 23일 LG계열의 광고회사 HS애드의 ‘프로젝트 xT팀’에 어떤 방식으로 일하느냐고 묻자 바로 튀어나온 대답이다. 아이디어와 아이디어를 부딪치고 융합해 수없이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분화시킨다는 것이다. xT라는 팀 이름도 교차하는 수만 가지 아이디어를 하나로 융합하고 모은다는 ‘크로스 싱킹(Cross Thinking)’의 약자다.

 xT팀은 일반적인 광고제작팀이 아니다. 유엔에서 1등상을 받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음원 차트 1위를 한 공익 가요, 시민 1만 명이 몰린 서울시청 ‘마음약방’ 자판기를 그들이 만들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강렬한 캐치프레이즈와 톡톡 튀는 유머로 지난해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휩쓴 ‘배달의 민족’ 광고도 이들 손을 거쳤다. HS애드의 크리에이티브 총괄(CCO·Chief Creative Officer) 황보현(53) 상무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팀”이라고 xT팀을 정의했다.

프로젝트 xT팀이 성과물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앞줄 왼쪽부터 윤영진·김지영 차장, 김효진 부장, 황보현 상무. 뒷줄 왼쪽부터 서창호 차장, 김지원 대리, 서경종 부장. [신인섭 기자]

 7명으로 된 팀 구성도 독특하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영상 프로듀서(PD), 일본어를 전공한 광고기획자(AE·Account Executive), 공연기획자 출신의 디지털 광고 AE, 소셜미디어 관련 책을 쓴 디지털 전문가, 화장품 패키지 디자이너 출신의 아트디렉터, 신문·방송 등 어떤 매체에 광고를 집행할지 분석하는 의류학과 출신의 미디어플래너 등 전문 분야가 다 다르다. 역할도 고정돼 있지 않다. 영상 PD인 윤영진(36) 차장이 게임을 만들고, 디지털 AE 서창호(36) 차장이 카피를 쓰기도 한다. 리더도 막내인 디자이너 김지원(31·여) 대리부터 선임 미디어플래너 김효진(40·여) 부장까지 프로젝트마다 매번 바뀐다. 기획-제작-매체팀으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일반적인 광고 제작 과정과 확연한 차이다.

 xT팀이 ‘아이디어 섹스’라고 부르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활발한 아이디어 회의가 작업의 기본이 된다. 난상토론을 세 번쯤 거치면 기획서를 자발적으로 써오는 사람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전문가인 김지영(34·여) 차장은 “한번은 구내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남성 기능성 팬티 얘기가 나왔다. 다들 재미있다고 아이디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새로운 캠페인 제안서를 만들었고, 제가 인맥을 동원해 그 속옷회사로 제안서를 들고 찾아가 프레젠테이션까지 했다”고 말했다. 광고주가 의뢰해야만 비로소 작업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처음 받은 의뢰와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키기도 한다. 지난 5월 세계적 광고제인 뉴욕페스티벌에서 유엔공보국(UNDPI) 1등상을 받은 앱 ‘데이콘’이 대표적이다. LG전자의 스마트폰용 바탕화면 제작을 의뢰받았는데 ‘에이즈의 날’ 같은 유엔 국제기념일을 당일 스마트폰 상태창에 아이콘 형태로 띄우는 앱을 만들어 냈다.

13년차 AE 서경종(39) 부장은 “누구 아이디어라고 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 상태창을 통해 하루를 새롭게 프로그램할 수 있지 않아?’ ‘금연의 날 아이콘 같은 게 뜨면 좋겠다’ ‘이름은 데이콘이 어때’ 식으로 계속 발전해 나갔다”고 말했다. 더 많은 기념일을 넣기 위해 데이콘은 출시를 조금 늦추고 막바지 작업 중이다.

집단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공헌 프로젝트에서도 ‘즐길수록 기부가 된다’는 발랄한 컨셉트를 내세웠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손잡고 만든 ‘어른이날(어린이를 돕는 진짜 어른이 되는 날)’ 캠페인 송 ‘어른맞니’는 지난 3월 음원 공개 12시간 만에 올레·다음뮤직 등에서 1위를 했다. 서울문화재단과 협력해 ‘외톨이 바이러스’ ‘자존감 바닥 증후군’ 등 20가지 마음병의 치료약을 파는 자판기 ‘마음약방’도 서울시청에 세웠다. 500원을 넣고 ‘노화자각증’을 누르면 ‘어바웃타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같은 영화를 추천하거나 회춘에 좋은 음식을 소개해 주는 식의 처방이 나온다. 호응이 좋아 오는 9월 각종 시험 준비생이 많은 노량진에도 설치할 예정이다. 트램펄린 위에서 즐겁게 뛰다가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을 기부금으로 내는 ‘기부방방’ 캠페인도 큰 인기를 모았다.

 2012년 김종립(59) HS애드 대표가 황 상무와 의기투합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맞춰 전혀 새로운 팀을 만들자”고 했을 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3년 동안 어떤 성과도 재촉하지 않는다.” 올해로 꼭 3년이 지났다.

프로젝트 xT팀은

● 어리지 않다
혁신팀은 20대로 꾸려야 한다는 건 편견. 경력 있는 전문가끼리 모여야 시너지가 일어난다.

● 일단 뛰어든다
‘ 맨땅에 헤딩’이 모토다. 누구도 의뢰하지 않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광고주를 구하러 간다.

● 싸움을 붙인다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모였는데 싸움이 없다면 나쁜 팀이다. 충분히 싸워야 갈등이 해결된다.

글=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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