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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산수(飛行山水) <8> 장암산에서 평창을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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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하늘이 확 열린다. 장암산 활공장이다. 여기서 직사각 패러글라이더를 달고 몇 발짝 뛰면 바로 창공이다. 발 아래 평창강이 아찔하다. 강을 거슬러 오른쪽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면 그 끝은 계방산이다. 강물이 만든 땅 위에 앉은 동네, 평창은 아담하다. 올 6월 기준으로 군청 소재지인 읍에는 8940명이 산다. 진부면이 9472명으로 더 많은데 이쪽에 관광지가 널려 있고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니 그렇다.

 장암산 뒤에 청옥산이 있다. 해발 1200m를 넘는 이 산꼭대기가 육백마지기라는 이름의 넓디넓은 밭이다. 땅 한 뼘이라도 더 얻으려 스며든 화전민들이 일궜다. 화전은 이제 고랭지 채소밭이 됐다. 능선에 서면 가리왕산을 비롯한 고봉들이 사방으로 출렁인다. 풍력발전기들이 밭을 가르며 북서쪽을 보고 일렬종대로 서 있다. 초속 4m 이상의 바람이 불어야 전기를 만든다니, 산맥 타고 북풍이 몰려 내려오면 바람개비들은 신바람이 날 테다. 미탄면사무소에서 정상까지 포장이 돼 있어 승용차로도 너끈히 오른다. 산 위는 섭씨 25도, 내려오니 31도였다.

 장날이었지만 시골장은 더 이상 북적이지 않는다. 대합실 문을 여니 버스 기다리던 이들의 모든 눈길이 내게 쏠렸다. 그런데 세상에나, 16명 중 4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둘과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하나를 빼고는 모두 할머니다. 장터 한쪽 대박식당 좌판에 앉았다. 할머니가 느릿느릿 음식을 내왔다. 올챙이국수 4000원, 메밀부치기가 2000원이다. 홀로 막걸리를 따르던 동네 할아버지가 가뭄 걱정을 하더니 그리스의 앞날과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를 논했다. 길가의 봉고차는 스피커 볼륨을 한껏 올려놨다. 냉장고 바지, 에어컨 팬티 구경하세요. 쿨맥스 국내산 원단입니다. 회사가 부도나 몽땅 들고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10분간만 반짝 세일합니다. 딱 10분간만 …. 밥 먹는 내내 녹음테이프는 돌고 돌았다.

평창=글·그림 안충기 기자 newnew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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