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의원 요즘 심정] "나 구속되면 아버지 쓰러질텐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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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민주당 김홍일(金弘一)의원. 그는 나라종금 로비 의혹사건과 관련, 1억여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일엔 검찰 조사도 받았다. 검찰은 나름대로 "정황과 단서를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그의 사법처리 여부를 이번 주말께 결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金의원을 9일 오전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억울하다"며 "결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검찰 조사 때도 (수뢰 혐의를)철저히 부인했다"면서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 정학모 LG스포츠단 고문을 나와 대질신문시켜 달라고 요청했는데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金의원은 "安전사장은 여러 사람과 어울려 한두 번 합석한 적은 있지만 한번도 따로 만난 일이 없다. 돈 거래나 비밀얘기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鄭고문에 대해선 "검찰에서 조사받던 날 복도에서 (鄭고문과)부닥쳤다. 반가워 아는 척을 했는데 鄭고문은 멋쩍은 듯 '죄송하다. 면목없다'고 하더니 지나쳐 버렸다"는 얘기도 했다.

40여분간의 인터뷰에서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다. 말도 아꼈다. 민감한 질문엔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간간이 목소리가 높아지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등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 지병이 악화돼 병원신세를 지기도 했던 金의원은 건강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다.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거나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1분도 못 지나 의자 한쪽으로 몸이 저절로 쓰러졌고 일으켜 세워주면 다시 말을 이었다. 언어장애 증상은 더 심해져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죄가 있다면 노무현 대통령을 도운 죄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래야 되느냐.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지난 대선 때 지역구인 전남 목포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했다는 주장도 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盧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는 것이다.

金의원은 "마음의 상처가 크다. 이러고도 계속 정치를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심경을 밝혔다.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큰 심려를 끼쳤다. 뵐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선 눈을 감은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내가 구속되면 아버지는 쓰러지실지 모르는데…"라며 괴로워했다. 그는 "검찰 조사를 마친 직후 곧바로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아버지는 '고생 많았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위한다면 내가 계속 정치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화제를 신당 쪽으로 옮겼다. 金의원은 "당이 쪼개져 둘로 갈라지면 신당이 독자적으로 (내년 총선에서)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서 "탈(脫)호남 주장에 대해 지역민심이 안 좋다. 탈호남을 간판으로 앞에 내걸어선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당 논의과정에서 인적청산론이 나오는 등 신.구주류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는데.

"(손으로 목을 치는 흉내를 내며)나도 청산 대상이니까…. 주위에서 여러 얘기가 많았지만 나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다."

-당에서 신당 창당을 결의하면 어떻게 할건가.

"생각해 봐야죠. 민주당은 아버지가 만든 당이다."

-당을 지키겠다는 얘긴가.

"그런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나.

"지역발전에 나만큼 일한 사람이 없다는 게 지역여론이다. 나와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나갈 것이고 출마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盧대통령의 취임 1백일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지만 金의원은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길 바라느냐"면서 즉답을 피했다. 대북 송금 특검과 동교동계 측근들의 잇따른 구속 등 사법처리에 관한 질문엔 "오늘은 그만하자"고 넘어갔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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