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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해결사 TV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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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SBS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가 괜찮지 않다. 사춘기 자녀와 부모의 갈등을 소재로 하는 상담·고민해결 프로다. 중학생 딸에게 과도하게 스킨십하는 아버지 편이 문제가 됐다. 아버지는 딸의 침대에 같이 누워 딸을 끌어안으려 하고, ‘뽀뽀 한 번에 10만원’을 내걸기도 했다. 질색하는 딸에게 아버지는 사랑과 친근함으로 스킨십을 강조했다. 대학생인 큰딸은 “나도 사춘기 때는 싫었지만 지금은 괜찮다”며 무덤덤해했다.

 여론은 들끓었다. 말이 그렇지 가족 내 성추행을 연상시킬 정도의 모습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친근하기 위해서”란 말도 불을 붙였다. ‘사랑해서’ ‘예뻐서’ 혹은 ‘딸 같아서’가 늘 성추행에 동원되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문제 없이 화목한 가족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문제의 본질은 이 가족이 화목한가 아닌가, 혹은 아버지의 스킨십을 가족들이 가볍게 넘기느냐 아니냐가 아니고 과연 케이스 자체가 방송에 적절했느냐 여부이기 때문이다. 큰딸은 “작가의 섭외를 받아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출연했다가 아버지를 비롯해 전부 이상한 가족으로 몰렸다. 작가들이 과도한 스킨십을 부추겼다”며 억울해했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거의 전적으로 성추행 문제에 대해 아무 개념 없는 제작진에 있지만, 사실 이런 일은 얼마든지 재발 가능성이 있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역시 고민상담 프로인 KBS ‘안녕하세요’에는 씹어 먹던 음식을 건네주는 연인이라든지, 가족들이 질겁해도 더러운 장난을 치는 남편 등 별별 희한한 사례들이 총출동한다. 어찌 보면 가족 망신에 남부끄러운 일인데도 스스로 TV 앞으로 걸어 나온 출연자들이다. 구설도 잇따른다. 8개월째 백수 ‘베짱이’ 남편의 경우에는 ‘당장 이혼하라’며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우리는 늘 TV가 문제라고 비판하면서 TV를 숭배하며 TV에 나오는 것을 권력화한다. 말로는 프라이버시를 외치면서도 TV 카메라 앞에서는 민망한 치부까지 자발적으로 드러낸다. 사회적 이목을 즐기고, 사회적 주목으로 나를 입증하는 시대다. 하긴 SNS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노출하고, 어려서부터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를 ‘국민동요’로 부르고 자랐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TV에 나와서는 애인과의 스킨십에서 외모 콤플렉스를 바로잡기 위한 성형수술까지 모두 읊조리고 해결책을 구하니 이만하면 전지전능한 만능 해결사 TV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