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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유괴범과 격투 아버지 숨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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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납치된 딸을 구하려고 유괴범이 지정한 장소로 경찰과 함께 현금으로 위장된 보따리를 들고 나갔던 가장이 유괴범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9일 목포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일 오후 10시쯤 전남 목포시 상동 S학원 뒷길에서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사흘째인 강모(42.무직)씨가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정모(13.중1.목포시 하당동)양을 훔친 승용차로 납치했다.

강씨는 이어 휴대전화로 집에 있던 정양의 아버지 정휘택(42.공무원)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딸을 살리고 싶으면 전남 무안군 삼향면 덕치마을 입구 공사장 철제빔 밑에 현금 7천만원을 가져다 두라"고 협박했다.

정씨는 목포경찰서에 사건 개요를 신고한 뒤 신문지 등으로 현금인 것처럼 위장한 가방을 만든 다음 4일 오전 2시쯤 집으로 찾아온 경찰관 2명과 함께 자신의 승용차로 현장으로 달려가 위장 가방을 놓았다.

정씨는 이어 목포 쪽으로 3백m쯤 되돌아오다 매복하겠다는 경찰을 내려놓은 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딸과 범인이 탄 승용차를 발견, 뒤꽁무니를 들이받았다.

정씨가 곧바로 뛰어내려 운전석에 있던 범인의 멱살을 잡고 10여분간 격투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가슴.배 등 8군데를 찔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정양은 아버지가 범인과 싸우던 틈에 승용차에서 탈출, 뒤쫓아온 경찰에 구조됐다.

범인은 정씨를 쓰러뜨린 뒤 함평쪽으로 60km쯤 달아나다 40여분 만에 뒤쫓아간 경찰에 체포됐다.

그러나 정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닷새 만인 9일 오전 7시25분쯤 끝내 숨졌다.

격투 당시 사건현장으로부터 무안읍 쪽으로 5백m쯤 떨어진 곳에 경찰 14명이 차량을 탄 채 매복하고 있었으나 범인이 달아날 때까지 현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유가족들로부터 안일한 대응이라는 반발을 사고 있다.

숨진 정씨의 동생(40)은 "차량이 충돌할 때 큰 소리가 나고 형이 유괴범과 싸우면서 딸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치는 등 10여분간 격투를 벌였는 데도 경찰관은 나타나지 않았다"며 "경찰관의 안이한 검거작전 때문에 형이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목포경찰서 이경수 수사과장은 "당초 정씨와 함께 있던 경찰관 2명이 차량에서 내리면서 정씨에게 목포로 돌아가라고 했는데도 정씨가 혼자서도 범인을 잡을 수 있다며 독단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가 손을 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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