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갈 데까지 간 '막말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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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의장이 9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외교를 '등신외교의 표상'이라고 폄하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더구나 李의원은 발언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해 확인하는 기자에게 "내 말이 뭐 잘못됐느냐"면서 "사전을 찾아보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등신(等神)'이란 낱말은 국어사전에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돼 있다. 李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盧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준비 부족과 국빈방문 등에 집착해 국민 자존심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야당 입장에서 정치적 수사로 이런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야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과 네티즌들까지 盧대통령의 방일외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점은 세심한 고려 없이 방일을 준비한 정부 측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말이란 '아'다르고 '어'다르다. 등신이란 말은 개인을 비하하는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국가 원수가 외국에 나가 정상외교를 하고 있는 마당에 제1야당의 고위당직자가 '등신외교'운운한 것은 말의 격이나 국가원수에 대한 예의로서도 적절치 못했다. 한.일 정상회담 등에 불만이 있다면 그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하면 충분하다.

더구나 발언 당시 대통령은 아직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국내의 이런 소동을 보고 일본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상대가 있는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국내정치의 당파성을 초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李의원의 이런 발언은 최근 계속돼온 '막말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정치는 천박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새 정부 들어서면서 청와대에서부터 격에 맞지 않는 말들이 무성해졌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반성하기 바란다. 오가는 말들이 이렇게 천박해서야 대화와 타협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李의원은 사과를 분명히 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당도 국회를 장기 파행으로 끌고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