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악마는 디테일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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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호 04면

오랜만에 가는 프랑스 출장, 에어 프랑스를 타게 됐습니다. 새로 장만한 것인지 내부가 반짝반짝 윤이 나더군요. 영화가 종류별로 많이 들어있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유럽 영화나 아시아 영화의 비중이 적지 않았기에,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편향적인 선택을 강요당했는지 새삼 느껴지더라고요.

놀라웠던 것은 비행 안내 비디오 클립이었습니다. 왜 승무원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등장해 안전 벨트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고, 위에서 산소 마스크가 내려오면 어떻게 해야하고, 물에 빠졌을 때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보여주는, 그 뻔한 영상 말입니다.

그게 달랐습니다. 깔끔한 스트라이프 티셔츠에 넉넉한 통치마 차림으로 등장한 프랑스 아가씨 다섯 명은 스튜어디스의 지시를 한 편의 마임극처럼 흥겹게 진행했습니다. 눈짓 하나, 입술 하나, 손짓 하나에 저절로 눈길이 갔습니다. 이렇게 집중한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 위로 자막이 바람처럼 흘러갑니다. ‘France is in the air’. 하늘 위에 프랑스가 있습니다. 이 비행기 안은 프랑스입니다. 프랑스 문화는 다릅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으로 들어왔습니다.

뻔한 것을 강력한 것으로 바꾸는 힘, 디테일은 힘이 셉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삽니다.

p.s. 소녀시대 베스트 앨범이 일본어 버전으로 들어있더군요. 그럴리야 없겠지만, 일본 그룹으로 오해할까봐 걱정됩니다. 누가 바꿔달라고 얘기 좀 해주세요.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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