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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뒷담화의 두 얼굴 … 씹으면 씹을수록 뇌는 피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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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뒤에서 친구 욕하기 싫어요

01 마음의 소리…‘너 이거밖에 안 돼?’

Q (단체 채팅방 나올까 고민인 여성) 15년 지기 친구 A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우리 둘이 속한 모임에는 결혼할 나이가 된 여섯 명의 여자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얽히고설키어 감정이 서로 안 좋은 친구들도 있습니다. 최근 친구 B에 대한 ‘뒷담화’가 이 친구들 사이에 많이 오갔습니다. 친구 B를 빼고 나머지 다섯 명끼리 채팅방 만들어 신나게 입방아를 찧었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우리 입방아에 오르던 친구가 요즘 자신의 고민과 상황을 제게 털어놨습니다. 친구 사정이 이해가 됐고, 힘내라며 격려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뒷담화 했던 일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제가 한심했습니다. 여자 여섯 명이 있는 모임이라 말이 많은데 이젠 더 이상 그런 이야기에 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나 다른 친구들 모두 B에 대한 오해를 풀었고, B에 대해 크게 오해했던 친구 C는 우리에게 미안하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C에게 그런 얘기는 B에게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때 친구 A가 ‘그럴 수도 있지. 해결됐으니까 다행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사람 입장 생각해 가며 말해라. 너는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애가 타겠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왜 네가 나서서 그러냐’는 A에게 ‘지겹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결국 A와 제가 싸움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요즘 예민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사실 좀 예민해진 것 같고 여유도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뒷담화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 채팅방에서 나와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뒷담화도 중독될 수 있다는 윤 교수) 수학 공식처럼 A B C가 나오니 복잡하네요. 요약하면 B가 뒷담화의 대상이었는데 오해가 풀렸고, C는 오해한 것에 대해 사과를 했는데 A는 사과에 적극적이지 않아 그것이 말다툼으로 이어진 거네요.

 우선 결혼할 나이가 됐기 때문이거나, 여자 여섯 명이 모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건 아닙니다. 뒷담화는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이 모인 곳엔 항상 흔한 일입니다. ‘난 뒷담화를 전혀 안 하는데, 쟨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니’하며 뒷담화를 하기도 합니다.

 뒷담화란 ‘담화’와 ‘뒤’가 합쳐져서 생긴 말입니다. 뒤에서 하는 말이죠. 회사 회의 때 윗사람 앞에선 방실방실 웃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회의를 마친 후 커피 자판기 앞에 모여 ‘우리 팀장 왜 저러니’ 라며 팀원들끼리 속내를 터놓는 것, 아주 흔한 뒷담화입니다. 회사에서 윗사람 뒷담화를 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목소리를 작게 해야 한다는 건데요, 제 목소리가 큰 편이라 전공의 시절 뒷담화가 앞담화가 돼버려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뒷담화는 왜 하는 걸까요. 뒷담화는 대부분 단체 활동입니다. 혼자서 뒷담화 하는 사람은 없죠. 함께 뒷담화 할 때 동질감을 느끼게 되고 그때 속상한 감정을 서로 나누면 약간의 위로도 일어납니다. 다 함께 한 사람을 저격하다 보니 ‘우리의 힘’도 느끼게 됩니다. 앞에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우리’지만 뒷담화 하는 순간엔 ‘우리가 더 강해’란 느낌을 받을 수 있죠.

 뒷담화의 심리에는 질투도 존재합니다. 사람에겐 질투가 다 존재하죠. 내가 더 잘나가고 더 멋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내가 더 멋지다고 느끼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노력으로 내 진짜 가치를 올리는 방법, 또 하나는 상대방의 가치를 낮춰 상대적으로 내 가치를 올리는 겁니다. 뒷담화는 후자에 해당하죠. 노력해서 내 진짜 가치를 올리는 것보다 수월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뒷담화 재미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뒷담화 하는 순간엔 힘이 느껴지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뒷담화가 심해지면 내 자존감에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남의 가치에 흠을 내어 내 가치를 올리는 일은 순간적으로 감성적 보상을 받을지 모르지만 실제 내 가치가 올라간 게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내 자존감에 흠집을 내게 됩니다. 내 마음 한구석에서 ‘넌 남의 뒷담화 하는 사람밖에 안 되니’ 하는 거죠. 앞에선 웃고 뒤에선 딴소리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중적인 감정을 동시에 처리해야 해서 뇌의 피로감도 심해집니다. 피로한 뇌는 삶의 소소한 행복감을 못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서 더 자극적인 험담을 하게 되는 뒷담화 중독 현상도 보일 수 있습니다.

 뒷담화를 아예 안 하고 살 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직 생활을 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속상한 일이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기에 뒤에서 우회적으로 내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거죠. 귀여운 뒷담화 정도야 서로 눈감아 줘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이 지나치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떠나 내 멘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02 남에게 맞추려다 더 많은 스트레스

Q 뒤에서 하는 뒷담화도 문제지만 전 상대방에게 저를 너무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의 기분보다 타인의 기분에 분위기와 행동을 더 맞춥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떨리고,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말하고 싶은 거, 지금 당장 하고 싶고 하기 싫은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알아도 그렇게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지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 두렵습니다. 그렇게 맞추다 보면 억울한 생각이 들고 그러다가 다른 곳에서 뒷담화를 하게 되네요.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자유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내가 사라지는 느낌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혼자만 외떨어져 있는 느낌이 크면 내 존재감은 희박해지죠. 그러나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 본래 모습을 너무 억압해도 자유로움이 사라지면서 내 존재감이 약해집니다. 관계 유지를 위해 지나치게 자유를 희생하다 보니 내가 상대방에게 종속돼버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뒷담화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라죠. 내용을 떠나 일단 책 제목에 손이 가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비정상입니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다음에야 남에게 일부러 해코지해 미움받을 사람은 없겠죠. 미움받을 용기라는 것은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삶의 진실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더불어 인생은 특별히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보여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한두 명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함께 가는 세상이기에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 맞춰주는 건 예의이며, 삶을 편하게 살 수 있는 지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밀함과 자유를 동시에 얻는 관계는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때 만들어집니다. 항상 나를 다 보일 필요는 없지만 인생에 그런 친구 한두 명은 있어야겠죠.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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