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스크린쿼터제' 고집만 할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제(한국영화의무상영제도)가 세계화의 그늘에서 우리 문화를 사수하는 유일한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더구나 스크린쿼터제는 1998년 이래 한.미간 투자보장협정(BIT) 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청와대의 스크린쿼터제 논의 움직임에 대해 미리부터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쐐기를 박은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의 발언은 주무부처의 수장이라 해도 지나치게 성급한, 부적절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37년간 지속된 스크린쿼터제는 암울한 70~80년대 한국 영화의 명맥을 이어 오늘날 한국 영화를 꽃피운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영화계는 그간의 성과를 들어 쿼터제가 세계 85% 시장을 점하는 거대한 할리우드 군단의 독주를 막고 '문화주권'을 지키는 장치라며 모든 논의를 나중으로 미루고 현행 최소 1백6일의 의무상영일을 완강히 고집하고 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제가 독립영화와 같은 소규모 예산의 극영화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으며, 관객의 선택을 제한하는 등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스크린쿼터제가 거둔 성과를 인정하면서, 이제는 쿼터제만이 능사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스크린쿼터제의 공과를 조목조목 따져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갈 새로운 대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 개선과 한.미교역 활성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발등의 불'이 된 BIT 체결을 위해서라도 현재의 의무상영일수가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그런데도 현행 의무상영일수 조정에 대한 논의조차 거부하는 영화계의 강경논리는 문제가 있다. 우리 영화의 경쟁력이 많이 강해졌으며, 세계화의 큰 추세에서 보호만이 유일한 대책이 아니다. 이제는 쿼터제의 보호막을 거두어도 계속 발전할 수 있도록 심도있는 플랜을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