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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대통령 방일 특별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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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7일 도쿄(東京)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에선 일본은 '압력'을 중시하고, 한국은 대화에 더 치중하는 등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이종원(李鍾元) 릿쿄(立敎)대 교수와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가 7일 일본프레스센터에서 중앙일보 독자를 위해 북핵 문제 등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대담을 했다.

*** 북한에도 인센티브를

李=일본은 盧대통령에게 두가지 점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 김대중(金大中)전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어느 정도 계승할지와 盧대통령의 개인적인 면이다. 일본은 이번 정상회담에선 최근 한.미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국제적인 압력을 더욱 구체화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3국 협력에는 찬성하면서도 대화와 교섭을 통한 외교 해결을 중시한다. 盧대통령은 다음달 중국을 방문한다. 외교적 해결책의 지역적 기반을 만들려는 것 같다. 대북정책에 대해 한.일 간 온도차가 느껴진다.

이즈미=한국과 일본이 일치할 수는 없다. 한.미.일 3국이 협력해 대처한다는 기본 입장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李=한.미 정상회담에서 盧대통령은 미국 입장을 많이 고려했다. 실제 이상으로 반미주의자로 비춰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평화적 해결 측면에서 접근했다. 한국 정부도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지금까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던 한국 정부가 이번 공동선언문에 납치 문제를 포함시킨 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았다고 본다. 그렇더라도 대북 압력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우려하면서 평화적 해결을 중시했다. 반면 일본은 대북 경제제재 등을 검토 중이다.

이즈미=심각할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니다. 압력과 외교 수단을 모두 이용해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점은 중요하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외교적 수단을 쓸 것인가에 대해 한.미.일 3국이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李=일본의 정책이 '대화'에서 '대화와 압력'으로 전환됐지만 압력은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국 정부가 아직 구체적인 평화적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쉽다. 미국.일본은 자체적으로 구체적인 경제제재안을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독자적인 평화해결안을 보여줘야 한다.

이즈미=압력만으로 정리될 상황은 아니다. 균형을 잡기 위해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국제적으로 책임있는 국가'가 될 경우 국제사회가 제공할 인센티브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없다는 점이다.

李=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이 다자 간 협의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고, 중국의 역할을 평가한 것은 의미가 크다. 일본의 대북 정책이 '대화와 압력'으로 바뀌었지만 대화를 중시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즈미=일본이 어떤 형태로 북한과 교섭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현 단계에서 정상회담은 어렵다. 한국.일본이 참여하는 5자 또는 6자회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이보다는 한국과 일본이 각자 입장에서 대북 정책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盧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계승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일본은 잘 모른다. 한국은 확실한 정책방향(로드맵)을 보여줘야 한다. 일본도 지난해 평양선언에서 양국 간 문제를 해결한 후에 다국 간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만큼 대북 문제와 해결 방안을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李=盧정부의 대북 온건노선 배경에는 같은 민족이란 이유 외에 경제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 정부는 중국.러시아 등 잠재력이 큰 경제권에 관심이 많다. 북한 내의 인프라 구축이 가져다 줄 경제적 이익은 크다. 일본도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이즈미=그러나 북한이 계속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리 경제적인 매력이 있어도 가까이 갈 수 없다. 한국이 같은 민족이고 경제적으로 밀접하다 해도 북한이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대북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제사회도 북한이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李=그 기준이 미국 입장에선 핵 문제, 일본에선 납치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핵 문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요구를 할 수 있지만 납치 문제의 경우 어느 선까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이번 공동성명을 보면 1998년 한.일 공동성명 당시의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에서 보였던 의욕과 알맹이가 없어 허전한 인상이다. 한국인의 비자 면제, 양국간 셔틀항공기 운항, 재일 한국인의 지방 참정권 부여, 자유무역협정(FTA)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노력한다"는 식의 말만 있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게다가 盧대통령 방일 시점에 터진 아소 다로(麻生太郞)자민당 정조회장의 창씨 개명 발언과 유사법제 국회 통과는 盧대통령 방일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즈미=동감이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98년 방일 때와 달리 盧대통령은 취임 후 3개월 만에 방일했기 때문에 아주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는 좀 이르지만 98년 공동성명 이후 양국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에 대해 성적표를 매겼어야 했다. 앞으로 5~10년 간은 일본 내 어디서든지 '아소 발언'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런 전제 아래 그것에 어떻게 훌륭하게 대처할지 생각해야 한다.

李=한국이 '아소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장관을 지낸 여당 정조회장이 盧대통령 방일 직전에 그런 말을 한 것은 외교적 센스나 한국에 대한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 FTA는 안보와 연계를

이즈미=역사 문제 해결은 일본에서 40대 국회의원이 주류를 이루면 가능할지 모르겠다. 현 정치권의 구성을 보면 (역사 관련 발언들이)계속될 것이다. 유사법제 문제는 일본인 스스로 "유사법제는 군사대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일본은 컨트롤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 그렇게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 나이 든 사람들 때문이다. '이상한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전면에 등장하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李=유사법제는 일본이 침략당할 경우에 대비한 법률들을 정비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주권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침략의 우려가 있는 사태'가 확대 해석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일본의 위협 대상은 북한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 입장에서도 직접 연관이 있다. 일본이 어떤 상황을 침략으로 상정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일본 내에서도 이미 선제 공격의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이 아무리 "유사법제는 방어적인 것"이라고 해도 한국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단지 '우리 사정'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이즈미=盧대통령의 방일.방미를 지켜보면서 상당히 현실주의적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는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동북아 안전보장 문제까지 포함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또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란 측면에서 볼 때 아시아에서 양국만큼 동질적인 나라는 없다.

정리=오대영.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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