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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에 속지 맙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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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일주일에 100권이 훌쩍 넘는 신간 도서를 정리하는 출판담당 기자에게 책 표지를 둘러싼 ‘띠지’는 위험물이다. 종이에 손을 베이지 않으려 봉투에서 책을 조심조심 꺼낸다. 책장에 슬며시 밀어 넣으며 안도하는 순간 앗 따가워. 방심했군, 빳빳한 띠지에 또 손을 베였다. 위험한 만큼 유혹적이기도 하다. 모든 책을 샅샅이 읽을 수 없는 탓에 띠지에 적힌 문구에 자주 현혹당한다. ‘아마존 장기 베스트셀러!’ ‘뉴욕타임스 극찬!’ 앗 중요한 책인가 보군. 한 번 더 들춰보게 된다.

 독자들에게도 띠지는 애증의 대상인 모양이다. 지난주 한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 ‘책 띠지를 발명한 놈은 전 인류에게 죄를 진 겁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제가 출판사 측에서 돈을 받아 광고를 하니 이 책을 읽으세요-유명한 사람’ 식의, 있든 없든 아무래도 좋은 문구가 쓰여 있는, 정작 책을 읽을 때는 미끌미끌 제멋대로 움직여 방해만 되는 띠지를 통렬하게 비판한 글이다. 찬반 여론은 팽팽했다. 크게 보면 띠지를 포장지의 일부로 보느냐, 표지의 일부로 여기느냐로 갈린다. 포장지의 일부라면 즉시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표지의 일부라면 불편해도 버리긴 조금 찜찜하다.

 그럼 출판사들은 왜 굳이 띠지를 만드는 걸까. 당연히 홍보 때문이다. 출판사에 책의 띠지는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는 효과적인 광고다. 너도나도 하는 광고니 안 해도 그만일 것 같지만 “없으면 우리 아이가 다른 애들한테 밀릴 것 같다는 불안감에” 결국 띠지를 만들게 된다는 편집자의 고백도 있다. 기왕 광고하는 것, 보다 아름답고 재미있게 하려는 시도는 반갑다. 책 표지와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거나, 책에는 없는 콘텐트(저자와의 인터뷰 내용이라든가)를 충실히 채워넣은 띠지는 고이 보관하게 된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북스피어는 자사에서 출간한 책의 띠지에 서로 다른 알파벳을 하나씩 넣어 이를 전부 모은 독자들에게 선물을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오늘도 책상 앞에 쌓인 책의 띠지를 노려보다 엉뚱한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도 띠지를 씌워보면 어떨까 하는. 미스코리아 견장을 두르듯 띠지를 두르고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자신의 강점을 살뜰하게 적어 넣는 거다. ‘나 무슨무슨 명문대 나왔어’도 있고, ‘빈한 인상이지만 부모님이 빌딩주’도 가능할 거다. 견장을 두르지 않았을 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SNS에 올린 ‘뽀샵’한 프로필 사진, 자랑처럼 보이지 않으려 교묘하게 비튼 자기 소개 같은 것들이 결국 나의 띠지니까.

 몇 차례 낭패를 보기도 했다. 책 띠지에 적힌 ‘나 이렇게 좋은 책’에 넘어가 신문 서평란에 소개할 책으로 골랐다가 실망한 경우다. 정작 내용을 꼼꼼히 읽어 보니 하나 마나 한 이야기거나 기대보다 훨씬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신간을 마주할 때마다 ‘띠지에 속지 말자’ 다짐한다. 아마 사람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