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국적법 개정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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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을 마감하기 며칠 전 '말기암 환자-조선족 처녀 죽음 앞둔 눈물의 웨딩마치'라는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이 중앙일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일간지와 TV.라디오를 통해 알려졌다.

*** 혼인후 고민하는 외국인 배우자

신랑 崔씨는 1999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조선족 신부 吳씨를 소개받았으나 부모의 반대 때문에 2000년 1월부터 동거하며 지난 2월 딸을 낳았다.

그런데 신랑이 췌장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신랑은 아내가 한국에서 딸을 키울 수 있도록 한국 국적을 얻어주려 했지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행법상 신부가 국적 취득 자격을 얻으려면 중국에 두번 다녀온 뒤 2년 동안 동거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 불법체류자로 자진신고한 신부는 8월이면 출국 유예기간이 끝나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법률혼으로 인정되더라도 2년 내에 崔씨가 죽으면 2년 동안 동거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킬 수 없게 돼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는 사연이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과 이제 갓 1백일이 지난 젖먹이를 남겨두고 중국으로 돌아가도록 법이 강제하는 것은 너무 비인도적이다.

이 부부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하고, 남편이 사망하더라도 부인이 합법적으로 국적을 취득해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내용이다.

97년 개정된 국적법은 위장국제결혼을 방지하기 위해 혼인으로 인한 국적 취득요건을 강화했다.

우리 국민과 혼인한 외국인이 국적을 취득하려면 남녀 똑같이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서 2년 이상 거주한 주소가 있거나, 혼인 후 3년이 경과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하여 거주한 주소가 있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으로 인해 한국인 배우자가 2년 내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해 강제 출국당하거나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다.

또 배우자가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돈을 요구하고, 구타하고, 자기는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면 빼앗아가는 경우도 있다. 남편이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아도 이혼하면 강제 출국당할 것이 두려워 이를 모두 참고 노예처럼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국적 취득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점은 위장결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가정을 꾸려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거주권과 가족의 인권이다.

따라서 실제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절차는 충분히 거치되, 그 결과 혼인과 가족임이 충분히 인정된다면 지나치게 형식적인 규정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지속하게 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경우 혼인으로 인한 영주권 취득요건을 충족하지 못해도 그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 밖에 자신의 귀책사유 없이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할 수 없었던 사람, 또는 그 배우자와의 혼인으로 출생한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고 있거나 양육해야 할 사람에게는 영주권을 연장해 주고 있다.

*** 선의의 피해자 인권보호 배려를

또 불법체류 외국인이라도 미국민과 혼인하면 일률적으로 자국으로 돌려보내 합법적 비자를 받아 들어오도록 요구하지 않고 사안에 따라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면서 합법적 체류자로 전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일본의 경우 불법체류 외국인이 일본 국민과 혼인하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가족보호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체류 자격을 부여하고, 취업이 가능하도록 출입국관리법을 바꾸었다.

우리도 이를 참고해야 한다. 김경천 의원 등 31명이 2002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국적법 개정안이 법사위에 계류돼 있다. 이 개정안을 하루 빨리 통과시키고, 출입국관리법도 고쳐 가족보호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체류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국민과 혼인해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들어온 선의의 외국인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법적인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양정자 대한가정법률복지 상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