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고졸 면서기서 차관급 오른 '일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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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학력과 출신만 중시하는 관료사회의 인사관행을 깨겠다는 참여정부의 의지가 저를 다시 부른 것 같습니다. 전체 공무원의 85%를 차지하는 비(非)고시.고졸 출신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급 이상 공무원 15명 가운데 비고시 출신이라곤 김두관(金斗官.44) 장관뿐이던 행정자치부에 최근 또 한명의 비고시 출신이 입성했다.

지난 4일 소청심사위원장(차관급)에 임명된 김완기(金完基.59) 전 광주시 행정부시장. 2001년 12월 말 학력(고졸)과 비고시 출신이란 벽에 부닥쳐 '9급 신화, 아름다운 명예퇴직'이란 신문기사를 뒤로 한 채 공직을 떠난 주인공이다.

이장에서 출발한 장관에 면서기에서 시작한 차관급. 1급 이상 직위 중 최연소와 최고령자가 나란히 비고시 출신으로 행자부를 이끌게 됐다.

金위원장은 광주고에 입학할 때까지 수석을 놓친 적이 없었지만 고교 졸업 때는 납부금 미납으로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병약한 노모를 모시고 단칸 셋방에서 3남 4녀의 생계를 꾸려가는 집안의 장남이었기 때문이다.

"졸업식 날엔 학교에 안 가고 무등산에 올라가 하루 종일 혼자 있었어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요. 하지만 그날에 대한 기억은 어려운 고비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다'라는 각오로 분발하도록 하는 거름이 돼줬지요."

형편이 나아지면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하면서 흙벽돌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金위원장은 고정수입을 위해 고교 졸업 3년 만에 9급 공채에 합격, 전남 광산군 서창면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 뒤 책벌레.일벌레로 불리며 주변에서 성실함을 인정받으면서 군→도→내무부로 자리를 옮기며 승승장구했다.

또 내무부 행정과장.전남도 기획관리실장.총리실 자치행정심의관 등 요직을 거쳤다.

"고시 몇기냐, 어느 대학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어요. 하지만 과시나 포장용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능력은 학벌이나 고시가 아니라 땀과 노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나처럼 학벌도 배경도 없는 후배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어요. 내가 지금 모시는 윗분이 최고의 '백 그라운드'라고."

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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