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두자니 무용지물, 철거하자니 3억 … 자전거도로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자전거 안 다니는 삼성로·개포로

지난달 27일 대치동 삼성로 자전거도로에서 한 학생이 자전거전용도로가 아닌 보행용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다. [김경록 기자]

중간중간 끊기고 경계 블록 파손된 삼성로
개포로 600m만 지나면 차도에 막혀
강남구청 “삼성로 파손된 곳 이달 중 보수”

강남구의 자전거전용도로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다. 주변 환경과 맞지 않게 만들어졌고, 체계적인 관리 역시 안 이뤄져 주민들이 이용을 꺼리는 것이다.

 강남구청이 제공한 ‘(강남구) 자전거도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의 자전거전용도로는 삼성로(대치동)·개포로(개포동)·헌릉로(염곡동) 등 총 3곳으로, 그 길이는 4.3㎞다. 출퇴근 시간대 자전거전용도로 이용 현황을 살펴보니 삼성로·개포로를 이용한 사람은 시간당 38명이었다. 이용자가 몰리는 시간인데도 이용자가 많지 않았다. 장원석 강남구청 교통정책과장은 “자전거전용도로 이용률이 저조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남구의 자전거전용도로는 삼성로·개포로·헌릉로(위부터) 등 3곳으로 총 길이는 4.3㎞다.

지난달 23일 오후 삼성로 자전거전용도로가 위치한 대치역 앞 사거리를 찾았다.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자, 왕복 6차선 양 끝의 자전거도로 옆으로 차량이 무섭게 질주했다. 이날 오후 3시경에는 자전거를 탄 중학생들이 전용도로가 아닌 인도 위로 행인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6년 전 만들어진 이 자전거전용도로는 버스 정류장, 아파트 입구 등 때문에 끊겨 제구실을 못한다. 차량 충돌을 방지하는 몇몇 경계 블록은 파손된 채 방치돼 있었다. 최민숙 강남구의회 의원(대치동·일원동)은 “구민들은 접촉사고가 날까 봐 인도에서 자전거를 탄다. 무늬만 전용도로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주민 조모(29)씨는 “강남은 언덕이 많아 자전거를 탈 곳이 마땅치 않다. 전용도로가 있는 대치동·개포동이 얼마 안 되는 평지(平地)인데 이마저도 부실하게 설치돼 있다”고 말했다.

 개포동과 일원동을 잇는 개포로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기자가 직접 지켜본 결과 지난달 17일 낮 12시부터 2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이 도로를 이용한 사람은 서너 명에 불과했다. 약 600m에 달하는 개포로의 이용률이 저조한 이유는 도로의 초입과 끝이 ‘차량 밀집지역’이기 때문이다. 주민 이모(59)씨는 “이 도로를 벗어나면 바로 차들이 많이 다니는 차도로 이어진다. 1㎞도 안 되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기 위해 자전거를 갖고 나올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박모(60)씨도 “이용자가 적은 자전거전용도로를 따라 불법 주차만 늘었다”고 지적했다.

 이 자전거도로가 설치된 건 2009년이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내 17개 주요 도로에 자전거전용도로를 만들겠다”며 자전거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자전거로 출퇴근이 가능토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강남구와 서울시는 총 6억원을 들여 삼성로와 개포로를 설치했지만, 정작 이용률은 저조하다. ‘전시 행정’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자전거도로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차도를 넓혀 교통 체증을 줄이라”는 주민 항의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지방단체가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에 따라 지역과 환경에 어울리게끔 전용도로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전용도로를 허물 수도 없는 일이다. 허무는 데도 예산이 들기 때문이다. 장원석 교통정책과장은 “삼성로·개포로의 전용도로를 철거하고 차선을 새로 그리는데 3억원 이상 비용이 든다”며 “이 역시도 낭비성 예산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강남구청이 검토 중인 대책은 이렇다. 삼성로의 경우 도로 남쪽 끝에 위치한 주공아파트가 재건축에 들어가면 시공사 측에 자전거전용도로 정비를 요청한다는 계획이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단, 파손된 일부 경계 블록은 이달 중에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개포로와 관련해선 “현재까지 결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조윤호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애당초 (통근·레저 등) 자전거 통행 목적과 지침을 명확히 세우고 전용도로를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글=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