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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룬 물가안정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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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5공화국들어 가장 잘경제실적으로는 물가안정을 꼽을수 있을 것이다. 82년이래 한자리수자의 물가안정을 유지하고 있고. 이젠 2∼3%의 초안정을 목표해도 놀라지않게 되었다. 옛날 경제가 미미했던 50연대엔 한자리물가가 있었으나 62년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이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자리이하로 떨어진것은 갖은 무리를 다했던 73년 한해뿐이다. 3년 연속은 처음이다. 그만큼 소중한 경험이며 씨앗이다.
실제 가계지출에서 느끼는 피부물가는 지수물가만큼 안정되지 않았을지 모르나 지수물가나마 이삼큼 오랫동안, 또 낮게 안정된것은 기록적인것이다. 첫술에 배부를수는없지 않은가.
물가안정이 저절로 된것은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원유를 비롯한 국제원자재값이 안정된데다 그런 찬스를 잘 살려 안정화정책을 마련할만큼 밀었기 때문이다.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해 쓰고있는 우리로선 국제시장에서 값이 오르면 방법이 없다. 72년 사채동결이라는 혁명적 조처를 취하면서까지 물가를 3%선으로 안정시켜보겠다고 발버둥 쳤으나 오래가지 못한것은 오일쇼크때문이었다.
마침 73년 호황을 위해 돈을 왕창 풀어 인플레의 요인을 만들어 놓았던터라 유가인상의 충격이 오자 폭발하듯 물가가 폭등했던 것이다. 이렇듯 물가안정은 안팎사정이 다 좋아야 오래 가는것이며.항상 삐끗할 소지를 안고 있다.
사실 이정도의 물가안정을 이룩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인고가 밑거름이 된 것이다. 근로자는 낮은 임금을, 농민은 낮은 쌀값을, 예금자는 낮은 이자를, 주주는 낮은 배당을, 정부는 낮은 예산팽창류을 참았던 것이다. 그리고도 국제수지의 희생이 컸다.
80년대들어 5년동안 국제수지는 무려 1백60억달러의 적자가 났고 이것은 고스란히 외채로 쌓여있다. 3마리토끼중 국제수지가 아무래도 불안한 것이다.
한자리수자의 물가안정은 모처럼 찾아온 찬스에다 여러희생이 밑받침된것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어느누구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깰수없는 것이다. 더우기 선거같은것에 밀릴것이 아니다.
원래 물가란 안심 턱놓을수있는게 아니다. 한번 잡기가 어렵지 깨어지기는 지극히 쉽다.
우리는 어쩔수 없는 해외의 복병이 늘 도사리고 있는데다 국내적 유인도 많다. 물가안정이 되면 사실 갑갑하다.
흥청거림이나 횡재가 줄어든다. 실업자도 늘고, 집도 안팔린다. 선거를 앞두고 있으면 표걱정을 하지않을수 없게되는것이다. 그러니 무슨수를 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것이다.
이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선거를 앞두고는 물가보다 경기를 앞세운다. 그러다가 선거가 끝나면 서둘러 조이는데 그후유증이 오래간다.
물가안정은 누구나 바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급하면 잊어버리기 쉽다. 표는 다급하고 인플레는 한참뒤에 오기때문이다. 몸을 무리하면 병을얻듯이 경제도 절제를 잃으면 탈이난다. 처음부터 인플레가 날만큼 일을 벌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급해지면 무리가 커진다. 다소의 인플레는 괜찮겠지 하며 안심하다가 일이 터지는 것이다. 어느 중앙은행총재는 『인플레란 임신과 같아서 「다소」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경구를 남겼다. 요즘 돈푸는 것이나 기공식 러시나 각종사업이 터져나오는걸 보면 「다소」를 너무과신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돈도 연간으로 보면 별로 늘지않았다고 자위하는 모양인데 돈은 한꺼번에 왕창 느는것이 더 위험한 것이다.
상반기엔 숨도 못쉬게 죄였다가 연말에들어 집중호우식으로 푸니 어찌 충격이 없겠는가.통화운용이 난폭운전같다.
겨울철에 기공식은 웬그토록 많고 정부공사도 내년초에 40%이상을 조기발주한다. 경기가 나쁠때나 쓰는정책이다.
또 요즘 잇달아 터져나오는 각종사업계획들을 보면 어지러울 지경이다. 구시대에 여러번 경험했던 것들이다.
우리의 자원능력으로 보아 너무 의욕적인것 갈다. 장미빛 청사진을 활짝 펼쳐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것도 좋지만 한자리물가로 겨우 가라앉으려는 사회분위기가 다시 흐뜨러질까봐 걱정이다. 지금은 안정을 다질때지 들뜰때가 아니다.
4백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갚아가면서 매년 40여만명익 새일자리를 만들어 가려면 가용자원을 가장 생산적으로 써도 빠듯하다.
또 해외건설이나 해운에서크게 구멍난것도 국민부담으로 메워야하고 올림픽준비도 본격적으로 해야한다.
선거라고 다소 풀어질 여유가 없는것이다.
정부도 절약과 내핍을 강조하고 있다. 이제까지처럽 외채증가라는 쉬운방법을 쓰는것도 턱에 찼다,.가계저축을 중심으로한 국내저축률을 크게 늘려야하는 것이다. 하기야 안정화시책이라는것이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운것이다.
선거라는 대사를 앞두고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지금와 안정기조가 어떻게 다진것인데 쉽게 양보할수가 있을 것인가. 처음엔 대부분 갸우뚱하던 사람들도 이젠 물가안정에 자신을 갖게끔 되었다. 물가안정에 또한번 정책부도가 나는 사태는 기필코 막아야한다. 그것은 경제문원이상의 심각한 사태다.
물론 안정기조를 깰 생각은추호도 없으며 정책도 그렇게 펴고있다고 주장할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 꼭 가지가 부러져야 바람이 부는것인가. 나뭇잎이 흔들리는걸 보면 바람부는걸 알수있다.
불의의 임신이 있듯이 불의의 인플레도 있을수 있다는것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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