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초 차 생사 갈린 시신, 지금도 생각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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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강장선(左), 임경택(右)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에게 1995년 6월 29일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 서초소방서 소속이었던 강장선(49) 용산소방서 진압대장은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는 참사 현장에서 본 한 구의 시신이 지금도 떠오른다고 한다. 그는 “다리만 빠져나온 상태였는데 0.5초 차이로 생사가 갈린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강 대장은 “여기저기서 살려달라 외치는 와중에 도둑들까지 기승을 부렸다”고 전했다.

 조현삼(56) 목사는 자원봉사자로 현장을 누볐다. 당시 라디오로 소식을 접한 조 목사는 랜턴 수십 개를 사들고 곧장 참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아수라장이라는 말 그대로였다”며 “두 달 넘게 봉사하는 동안 자원봉사와 물품 지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익봉 전 서초구청 생활안전과장은 당시 현장 행정업무를 맡았다. 그는 “시신의 인상착의를 전지에 크게 써서 서울교대 담벼락에 붙였다”며 “서울교대 체육관에 있던 유가족 수백 명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담벼락에 모여들어 매일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회상했다.

 임경택(64) 전 목포대 교수는 사고 발생 11일 후 구조된 최명석(40)씨 등 생존자 3명의 위치를 정확히 맞혀 화제가 됐던 인물이다. 20여 년간 기(氣)를 수련했다는 그는 당시 생존자들의 간절한 구조 요청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기로 생존자를 찾았다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 입을 다물려고 했지만 평생 죄책감이 남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며 “최씨가 구조된 곳 부근에서 약한 기가 하나 더 느껴졌는데 얼마 후 그 자리에서 깨끗한 시신이 발견돼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최명석씨는 해병대 제대 후 GS건설에 특채돼 현재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성실하게 근무 중”이라며 “사고 당시 일에 대해선 떠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솔직히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다.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생존자 2명도 다르지 않다. 각각 사고 후 13, 17일째 되던 날 구조된 유지환(37·여)·박승현(39·여)씨도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유씨의 한 지인은 “유씨는 경기도 인근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고 있다. 삼풍 사고 주기 때마다 (언론이) 자신을 찾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한영익 기자 .배지원(서강대 철학과)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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