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임종이라도 하게 해줘 감사” … “힘든 것 알아줘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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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을지대병원 간호사들에게 ‘편지 임종’을 부탁한 이모씨가 이 병원 홍민정 파트장(위)에게 건넨 감사의 글(왼쪽). 이씨는 지난 16일 격리 병상에 있는 아내에게 쓴 편지의 대독을 간호사에게 부탁했다. [사진 대전 을지대병원]

24일 오후 대전 을지대병원 4층 내과계 중환자실 인터폰이 울렸다. 중환자실 안에 있던 홍민정 파트장(수간호사)이 인터폰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홍 파트장은 목소리만으로 대번에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지난 16일 이 병원이 코호트 격리(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해 병원 안 환자·보호자·의료진의 출입을 봉쇄하는 조치)됐을 때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둔 환자(65·여)의 남편 이모(63)씨였다. 그는 병원이 격리되는 바람에 아내의 임종을 지킬 수 없게 되자 중환자실로 전화를 걸었고, 홍 파트장 등은 그가 전해준 편지 내용을 환자에게 대신 읽어줬다. 메르스 이산가족의 ‘편지 임종’이었다. <본지 6월 17일자 1, 4면>

 이씨는 이 병원의 코호트 격리가 23일 0시를 기해 해제되자 중환자실을 찾았다. 때마침 대청소 중이어서 방문자는 거의 없었다. 평상복 차림의 그는 이곳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이씨는 “간호사님들이 (코호트 격리기간 동안) 힘들었겠지만 아내의 임종을 대신해 줘서 고맙다”며 “아내의 장례를 잘 마무리했다”고 말했다. 그러곤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홍 파트장은 받을 수 없었다. 환자한테 이런 걸 받지 못하게 돼 있는 규정을 떠올렸다. 이씨가 오히려 난감을 표정을 짓자 마침 옆에 있던 간호부장이 그냥 받으라고 눈짓을 했다. 이씨는 “식사 꼭 같이하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고 떠났다.

 봉투의 뒷면엔 감사의 글이 적혀 있었다. “○○○ 환자 보호자입니다. 그동안 간호에 정성을 다해주신 홍민정 수간호사님을 비롯하여 ○○○ 환자 담당 간호사님 감사합니다. 특히 임종을 대신하여 주시고 편지로라도 임종을 할 수 있도록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르스 격리가 해제되어 이제 몸을 추스를 시간이 왔네요. 약소하지만 여러분 식사 한 번 하시도록 넣었습니다. 보호자 이○○ 배상.”

 이씨의 아내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그 후 입원한 메르스 환자 때문에 9일부터 코호트 격리됐다. 이씨와 가족들도 중환자실 방문 전력 때문에 자가격리됐다. 8일 면회가 마지막이었다. 임종이 다가온다는 소식에 애간장이 탔다. 16일 이씨와 아들·딸은 간호사에게 전화로 편지를 읽었고 간호사들이 받아 적어서 환자한테 대신 읽어줬다. 환자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살림을 일으키고, 약한 아이들 훌륭하게 키워내고, 못난 남편 회사에서 큰 책임자로 키워내고….” 이씨의 편지가 먼저 대독됐다. “지난날들 엄마 딸로 살아와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남은 날들 엄마 딸로 열심히 살게요. 그동안 엄마가 제게 주신 사랑으로 아이들도 그렇게 사랑으로 키울게요.” 딸의 편지 낭독 때 중환자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간호사들은 그 뒤 이씨 아내 병상 옆에 편지들을 붙여 놓았다. 환자는 약 5시간 뒤에 눈을 감았다. 이씨와 가족들은 22일 자정까지 격리 신세여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23일 하루 만에 장례를 치렀다.

 홍 파트장은 “편지를 읽어준 것밖에 없는데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 간호사는 “우리한테 신경 쓸 경황이 없으셨을 텐데…”라고 했고, 다른 간호사는 “저희가 힘든 걸 알아주시니 헛되지 않네요. 감동이에요”라며 고마워했다. 어떤 간호사는 “2주간(코호트 격리기간) 너무 힘들어 간호사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했는데, 간호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37명의 간호사 대부분이 “감동이에요. 그분(이씨를 지칭) 최고예요. 맛있는 거 먹어요”라고 단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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