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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 강판, 무쇠 냄비 … ‘상남자’의 부엌은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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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주방용품

① 다지기·슬라이스기·채썰기 등 용도에 따라 칼날을 바꿀 수 있는 ‘필립스’ 푸드 프로세서. ② ‘삼시세끼’에 등장해 화제가 된 ‘제이미 올리버’의 돌절구. ③ ‘옥소’의 채소 탈수기. ④ 열기를 오래 보존하는 ‘르크루제’의 무쇠솥. ⑤ 빵 반죽과 발효, 스테이크 구이까지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밀레’의 전기 오븐.

쿡방 뜨면서 ‘나도 해볼까’ 요리에 빠져
여성과 달리 다기능 아이디어 제품 선호
주부들이 꺼리는 묵직한 무쇠 팬도 로망

요리 프로그램이 TV 채널마다 넘쳐나는 ‘쿡방’의 시대다. 화면을 지켜보던 남자들은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대신 부엌으로 간다. 요리에 재미를 붙인 요즘 남자들의 주방엔 오븐부터 돌절구까지 없는 게 없다.

지금 TV는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으로 연일 화제다. ‘삼시세끼’의 이서진부터 ‘냉장고를 부탁해’의 최현석·정창욱·맹기용 셰프에 이르기까지 식칼 든 섹시한 남자들이 채널을 장악했다. 요섹남들의 요리는 요리 선생님 레시피처럼 복잡하지 않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도 멋진 요리를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평생 부엌에서 요리해 본 적 없는 남자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주현근(32)씨는 최근 요리에 취미를 붙였다. TV 요리 채널에서 소개한 음식 중 비교적 쉬운 걸 메모했다가 퇴근 후 만들어 먹는다. “요리는 다른 취미에 비해 돈과 시간이 적게 들어요. 결과물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심리적인 만족도나 성취감도 높은 편이고요.”

요리하는 남자들에 대한 여자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여자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밥을 사주는 남자보다 함께 장을 보고 식재료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레이먼 킴 셰프는 “요리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주제”라며 “남자에게 폭 넓은 화젯거리를 제공하는 매력적인 콘텐트”라고 말했다.

G마켓 주방용품, 남성 매출 25% 증가

‘삼시세끼’의 이서진이 강원도 정선편 촬영장에 직접 가져 온 돌절구. 직접 마늘을 다지는 장면이 방송을 타며 화제가 됐다. [사진 방송 캡처]

요리하는 남성의 수요가 늘면서 주방용품 업체는 새로운 고객의 등장에 분주해졌다. 가전제품부터 소형 조리도구에 이르기까지 남성 고객들의 매출 성장세가 가파르다. G마켓은 지난 1~6월 남성 고객이 구매한 밥솥·튀김기 등 주방용 가전제품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25% 늘어났다고 밝혔다. 냄비와 팬·식기 등 주방용품에 대한 남성 고객의 매출은 24% 성장했다. 옥션에선 같은 기간 내 남성이 구매한 가전제품 매출이 34%, 주방용품은 15% 늘어났다. 온라인 쇼핑몰 ‘아이스타일24’에서도 20~30대 남성이 구매한 주방용 가전제품과 주방용품의 지난달 매출은 전년 대비 300% 이상 성장했다. 리빙용품을 담당하는 김해란 상품기획 담당은 “젊은 층이 방송을 통해 요리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새로운 수요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G마켓 소형 가전제품 코너를 총괄하는 손형술 팀장은 “남성 소비자의 경우 요리를 쉽고 간편하게 해주는 제품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여성 고객들은 칼로 재료를 다듬고 기름을 끓여 튀김 요리를 하는 등 고전적인 조리법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남성 고객은 번거로움을 덜어주는 제품이라면 쉽게 구매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죠.”

푸드 프로세서나 핸드 블렌더가 대표적이다. 채 썰고 다지고 으깨는 과정을 버튼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 칼질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들에게 유용하다. 조리 시간도 단축해준다. 필립스의 푸드 프로세서는 다지기·슬라이스기·반죽기·채썰기·강판 전용 칼날이 있어 용도에 따라 바꿔 끼우면 손쉽게 재료를 다듬을 수 있다. ‘리큅’의 멀티쿠커는 보온·튀김·구이·찜 요리 등 여덟 가지 조리가 가능해 활용도가 높다. 에어 프라이어에 대한 반응도 높다. 기름을 끓이고 재료를 튀긴 후 폐유를 버리는 번거로운 과정이 없다. 공기를 기름처럼 뜨거운 상태로 변환해 기름기는 쏙 빼고 바삭한 튀김 요리를 만들어주는 필립스 에어 프라이어도 인기 상품이다.

가전제품 중에는 간식메이커 매출이 높다. G마켓의 경우 남성 고객들이 올린 간식메이커 제품의 매출이 지난해 1~6월 대비 112% 늘었다. 샌드위치·와플·핫케이크 같은 간식류를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이다. 혼자 사는 남성 싱글족에게 반응이 좋다.

요리 예능에 나온 ‘김풍 프라이팬’ 완판

쉽게 요리하는 즐거움을 보여주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백종원 대표. [사진 방송 캡처]

남성들은 요리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디어 도구를 좋아한다. 용도에 따라 바꿔 쓸 수 있는 ‘조셉조셉’의 컬러풀한 도마, 버튼을 누르면 체가 회전하며 샐러드용 채소의 물기를 빼주는 ‘옥소’의 탈수기, 초콜릿·치즈 등 용도에 따라 단면을 바꿔서 사용하는 ‘쿠이지프로’의 강판, 다지고 자르는 기능을 모두 갖춘 ‘제이미 올리버’의 마늘 다지기 등이 인기 상품이다. 최경애 제이미 올리버 홍보담당은 “장난감 같은 디자인 주방용품을 접하면 쉽게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비자가 지갑을 쉽게 연다”고 설명했다.

관리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주부들은 선뜻 사지 않는 무쇠 팬이나 구리 냄비는 오히려 남성들에게 더 인기다. G마켓에서 남자들이 무쇠 팬과 그릴을 산 경우는 매출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15% 늘었다. 이런 제품들은 세척 후 기름칠을 해주거나 녹슬지 않도록 마른행주로 닦아주어야 해 관리가 까다롭다. 요리를 좋아하는 30대 직장인 조진혁씨는 “TV 방송의 영향이 큰 것 같다”며 “남자가 팔뚝을 걷고 묵직한 팬에 고기를 굽는 장면을 보면 왠지 나도 연인을 위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TV 속 요섹남이 사용한 주방용품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자인 김풍 셰프가 사용한 블랙 사각 직화 프라이팬은 제품을 수입해서 판매하는 쇼핑몰에서 바로 품절됐다. ‘삼시세끼’ 이서진은 강원도 정선편 1회에서 본인의 소장품인 영국 브랜드 제이미 올리버의 돌절구를 소개했다. 해당 제품도 방송 직후 동났다. 드라마 ‘맨도롱 또똣’의 남자 주인공 유연석이 보말미역국을 끓인 국산 냄비 브랜드 ‘쿠퍼’의 구리 냄비는 방송 직후 문의가 빗발쳤다.

전에는 예비신부나 주부 위주로 진행했던 쿠킹클래스도 남성 고객을 겨냥한 수업을 내놓고 있다. CJ제일제당 백설요리원은 ‘아빠의 오감만족 건강한 요리’ 같은 테마 클래스를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진실 휘슬러 홍보팀장은 “프러포즈 클래스, 신혼부부 클래스처럼 남자가 요리하는 수업의 반응이 좋아 더 확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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