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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고통 터널을 통과한 소프라노 가수의 이야기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아이구, 어서와요. 지난번 독창회 때는 너무 감동받았어요. 그날 푸치니 오페라 아리아는 고음처리가 무척 힘든 곡이었는데 너무 잘 불렀어요.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 생각했어요"

"아이, 교수님이랑 간호사님들이 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사실 갑상선 수술받고 1년여년에 독창회를 가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보통은 처음엔 괜찮타가 뒤로 갈 수록 목소리 내기가 힘들어 지는데 어찌 된 일인지 뒤로 갈 수록 소리가 더 잘 나오더군요"

"네 저도 처음엔 긴장했었는데 뒤로 갈 수록 자신이 붙고 더 부를 힘이 남았다고 생각되더군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소프라노 환자분은 2014년 4월4일에 왼쪽 갑상선 날개에 생긴 유두암으로 왼쪽 갑상선 반절제술을 받았다.

수술할 환자들 중에 필자를 가장 긴장시키는 환자는 성악가들이다. 그중에서도 소프라노 가수가 가장 골치 아프고. 아나운서, 텔런트, 교사 등등 목소리를 주로 쓰는 직업도 그러하지만 소프라노 가수에 비할 수 없다. 이들이 수술 후에 목소리가 변했다고 생각해 보자. 끔찍하지 않은가? 한사람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할 수만 있다면 이들 수술은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독일에서 테너 활동을 하던 배재철씨가 갑상선암 수술후 목소리를 잃어 큰 고통을 받았던 생각을 하면 성악가의 갑상선암 수술은 집도의의 입장에서는 엄청 큰 스트레스가 아닐 수가 없다. 이 소프라노 미인은 작년봄에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암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초진 때 초음파영상에서 보이는 암의 크기는 0.6cm밖에 안되었지만 고놈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여~엉 마음에 안드는 것이었다. 크기가 1cm 안되고... 직업이 소프라노이고....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웬만하면 좀 두고 보자 했으면 좋겠는데 암의 위치가 왼쪽 갑상선 꼭데기 피막에 붙어 있지 있지 않은가. 요상한 위치인 것이다. 이 위치에 암이 있으면 깨알 같이 작은 크기라도 암세포가 빠져 나와 바로 옆목림프절로 전이가 잘 일어 난다.옆 목에 혹덩어리가 발견되어 수술해보니 미처 발견되지 못한 깨알 갑상선암에서 전이되어 온 것이더라는 얘기다.

오래 전이지만 필자는 이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여 당시로서는 거금의 논문상을 받은 일도 있다(Head Neck1989;11(5):410~3))ㅎㅎ. 자~, 이 환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햄릿의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두고 봐?... 아니지 그러다가 퍼져 수술이 커지면 그야말로 성대와 관련된 근육들이 굳어지고 유착되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암이 퍼지기 전 작을 때 수술하면 수술침습이 작아 노래근육들이 덜 지장을 받을 것이 아닌가?...

이래저래 고민 끝에 수술을 권유했는데 마음고통이 심했을 환자가 의외로 쿨하게 수술을 받기로 했던 것이다.

성악가의 수술은 성대신경으로 가는 미세혈행과 림프혈액을 최대한 보존시켜 성대신경의 영양공급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고음을 내게하는 상부회귀신경 외분지와 윤상갑상근(cricothyroid muscle)을 원형대로 보존 시키고, 육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미세한 성대신경 분지를 보존시키고, 그리고 후두와 기도전면이 그 앞을 덮고 있는 띠근육(strap muscle)과 유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식도와 유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고.... 말이 그렇지 이게 어디 쉬운 작업인가.

아무리 이렇게 해주려고 해도 암이 여기저기 퍼져 있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 환자와 같이 목소리가 생명인 환자는 암의 크기가 작을 때 수술해야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는 것이다. 부담이 된다고 기피하면 점점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소프라노 환자분은 다행하게도 림프절전이도 피막침범도 아직 없어 갑상선암 수술의 원칙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수술침습으로 성공적인 수술을 할 수 있었다.

수술 후 신지로이드 복용없이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아니 지장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성악가로서의 갈길을 훌륭히 가고 있는 것이다. "목에 수술상처도 안보이네요. 목주름이 좀 위쪽에 있었지만 그 주름 따라 수술했던 것이 아주 잘되었던 것 같아요". "예, 말 안하면 수술받은 줄도 몰라요. 무대에 서는데 지장도 없구요. 감사해요, 교수님"

그렇다. 목소리가 중요한 직업을 가진 환자는 그 것 때문에 수술을 피할 것이 아니라 수술을 일찍해서 수술침습을 최소화 함으로써 목소리의 변화를 최대한 피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겁이 나서 미적미적 하다가는 나중에 참으로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생사 다 이런 것이 아닐까? 이왕 닥친 일이라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해치워 버리는 것이 훗날의 큰 재앙을 미리 막는 길이 아닐런지....마음고통의 터널을 통과한 소프라노 가수의 대성을 기대해 본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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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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