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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만에 완치돼 퇴원했더니 … "동네 따돌림 더 괴롭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주변 엄마들이 바이러스 덩어리 보듯 저를 슬금슬금 피해요. 게다가 아이들까지 죄인 취급하니 메르스에 걸려 아팠던 것보다 지금 받는 정신적 고통이 더 괴로워요.”

 경기도 수원시에 사는 A씨는 긴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6일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3월 시어머니에게 간을 떼어 준 그는 이날 갑자기 열이 올라 병원을 갔다. 당시 응급실에는 메르스 ‘수퍼 전파자’ 중 한 명인 14번 환자가 있었다. 지난달 31일 자가격리 통보를 받았고, 5일 근육통 증세가 나타났다. A씨는 11일간의 격리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했다. 그는 “누군가가 내 온 몸을 야구방망이로 때리듯 아팠다. 아무도 없는 좁은 격리 병실에서 죽고 싶을 만큼 아픈 고통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퇴원한 그를 기다린 건 주변의 따가운 눈총이었다. A씨가 확진받은 뒤 남편과 두 자녀는 자가격리에 들어가 외부와 접촉이 없었다. 그런데도 ‘마녀 사냥’이 벌어졌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스스로 신원을 밝히라. 너희들의 프라이버시는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안전은 안중에 없느냐’ 등의 글이 올라왔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지난 10일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A씨가 사는 곳과 동선을 공개했다. 동네, 아파트 이름, 가족 관련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그 뒤 A씨의 신상이 노출됐다. 인터넷에는 이를 근거로 추적한 A씨의 실명까지 돌았다. A씨 남편은 직장에 부인이 메르스 확진자라는 소문이 퍼져 고초를 겪기도 했다. 수원시 측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공개한 것으로 환자를 노출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 13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라 환자가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A씨는 21일 “며칠 전 보건소 직원의 전화를 받고 가슴이 두근거려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주변 학부모들이 시교육청에 그의 자녀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공개하라고 민원을 넣자 교육청 측이 보건소에 확인을 요구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남편과 자녀는 자가격리에서 해제된 상태다. 의심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

 메르스 환자와 가족들의 신상 노출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이 없는 완치자나 자가격리 해제자들에게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진다. 이러한 ‘메르스 왕따’ 현상은 지역 내 환자의 거주지와 자녀가 다니는 학교 등을 공개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부채질했다.

 한 대형병원의 의료진 B씨도 신원 노출로 마음 고생 중이다. 그는 근무 중 감염돼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병실에 입원해 있다. 그가 사는 지역의 단체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B씨의 거주지와 직장, 자녀의 학교까지 공개했다. 박형욱 단국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는 “의료진 가족, 완치자 등을 사회적으로 낙인찍어 따돌리는 건 공동체 의식 결여의 증거다. 메르스에 따른 직접적인 고통은 의료진이나 환자들이 짊어지겠지만 그 부담을 시민들이 공유하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의료진 자녀 등교 제한 말라”=교육부는 21일 전국 시·도교육청에 메르스 관련 의료진, 격리자(확진자 포함), 완치자의 자녀에 대한 부당한 등교 제한, 학습권 침해를 감독할 것을 요구했다. 학부모 우려 이유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이 없는 의료진·격리자·완치자 자녀의 등교를 막는 유치원·학교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도하라는 지시다. 교육부는 학생의 등원을 막거나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유포한 학원에 대해서는 등록 말소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메르스 확산세가 누그러들면서 휴업 학교 수는 줄어들고 있다. 휴업·휴업 예정 학교는 19일 전국 108개에서 21일 5곳으로 감소했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학부모 요청에 따라 메르스 불안감이 큰 삼성서울병원 인근 학교 4곳에 보건교사 외 전문요원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스더·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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