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묻자 제자 자로가 답했다 "람보르기니 실컷 타보는 게 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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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위쪽은 『도올만화논어』 속 장면들.
김용옥

공자(孔子)가 어느날 제자 자로(子路)에게 물었다. “품고 있는 뜻을 한번 말해보겠니?” 자로가 답했다. “람보르기니 디아블로 스포츠카와 베르사체 모피 외투를 여한 없이 입고 타 보는 게 제 소원입니다.”

 2000년 전 인물인 자로가 정말 이렇게 말했을리가.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25장에 등장하는 원문은 이렇다. “수레와 말, 값비싼 가벼운 가죽 외투를 친구와 함께 쓰다가 다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길 원합니다.” 원문을 읽었을 땐 명확하지 않았던 의미가 현대적으로 풀어쓰니 친근하고 명쾌하게 다가온다.

 도올 김용옥의 『도올한글역주』(전3권)를 만화로 옮긴 『도올만화논어』(전5권·통나무)에는 이렇게 재치있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그림을 그린 만화가 보현(본명 이보현·46)씨는 원작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했다고 했다. “『도올한글역주』를 읽으며 여러 번 웃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지 싶더라고요. 공자와 제자들 캐릭터가 너무 생생하고, 특히 공자와 자로는 무슨 개그콤비 같았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논어를 접할 수 있게 만화로 옮겨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보현 작가는 “만화를 읽는 것으로 『논어』를 강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원문 499장의 모든 구절을 만화에 담았다”고 말했다. [그림 통나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도올 선생에게 허락을 받고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1년. 3권짜리 책을 5권의 만화로 옮기는 데 5년여가 걸렸다. 만화에는 도올 의 캐릭터가 직접 등장해 논어의 각 구절을 해설한다. 공자와 제자들은 동글동글하고 따뜻한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만화라는 형식을 빌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것도 있다. 『논어』의 원문 499장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책 속에 담겠다는 것이다. 보현 작가는 “흔히 『논어』 해설서는 저자가 취향에 따라 문구들을 뽑아서 재배치한다. 그렇게 해서는 『논어』를 읽었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전체를 다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한 데는 철학도였던 작가의 경험이 작용했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보현 작가는 “만화를 그리려면 작가로서의 세계관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이화여대 철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나 콘티작업에 꾸준히 참여했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만화는 『도올만화논어』가 처음이다. “철학을 전공한 제가 논어와 만난 것은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고전은 강독하는 방식으로 읽어야만 전체 내용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대학 시절 배웠기 때문에 이 만화만으로 『논어』의 전체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힘든 점도 있었다. 기본적인 내용은 도올 의 원문을 그대로 따랐지만, 만화가로서 자신의 개성 역시 드러내야 했다. 공자의 예(禮)라는 덕목을 세월호 사태와 연결지어 해석하거나, 스파이더맨이나 짱구, 장그래 등 여타 만화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아이디어 등이 그런 고민 끝에 나왔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행복한 작업”이었다. “매일 아침을 논어와 함께 시작하면서 깊이 있는 메시지에 감동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면 ‘내일 빨리 일어나 새로운 구절을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는 『논어』에 대해 “사람들이 살면서 4~5번은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다. 작가의 경우도 이번에 논어를 다시 읽으며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앎)’ 등 널리 알려진 구절 하나하나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을 경험했다. “옛날 중원에 살던 사람들의 생각이 요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옛사람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알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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