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저희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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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등에서 가끔씩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바른 표현일까?

'저희'란 말은 두 가지로 쓰인다. 첫째는 '우리'의 낮춤말로서 이때 듣는 사람(청자)은 '저희'에 포함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선생님,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라고 할 때 청자인 '선생님'은 '저희'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는 앞에서 언급한 사람들을 다시 가리킬 때 쓴다. "한국과 경기해서 진 이탈리아팀에서 우리가 심판을 매수했다고 한다. 이것은 저희가 형편없는 경기를 해서 진 것을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와 같은 경우다. 여기서 '저희'는 앞서의 '이탈리아팀'을 가리킨다.

'우리'라는 말은 청자를 포함할 때도 있고 포함하지 않을 때도 있다. "여보, 우리 영화 보러 갈까?" 같은 경우는 청자가 포함된다. 그러나 "김대리, 우리 먼저 갈게. 미안해"와 같은 경우 청자인 김대리는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약 철수가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저희 나라'라고 말한다면 '저희'는 청자를 포함하지 않으므로 한국은 철수가 속한 집단만의 나라이고 듣고 있는 시청자는 한국 국민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외국사람에게 얘기할 땐 '저희 나라'로 써도 괜찮겠네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자기 나라를 지칭하면서 일부러 낮춰서 말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저희 나라'는 '우리 나라'로 고쳐 쓰는 것이 적절하다.

김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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