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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원전 고리 1호기 정지는 졸속 결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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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지난 12일 고리 1호기를 40년간만 가동하고 정지할 것을 결정했다. 형식은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정지 권고이나 산업부 장관이 위원장인 만큼 명령이나 다름없다.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서 보면 발전소를 40년간 가동했으면 충분히 오래 가동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향후 원전 해체 시장이 크게 형성될 것이므로 정지시킨 고리 1호기를 대상으로 원전 해체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사실을 직시하면 이번 정지권고 결정이 합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원전의 수명은 40년이 아니라 통상 60년이다. 고리 1호기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가 공급한 60만kW급 원전으로서 동일 원자로형의 발전소가 미국에 6개 건설됐다. 이들 6기 원전 모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철저한 안전성 심사를 거쳐 20년간 추가 운영허가를 받았다. 이 중 5기는 현재 60년 가동을 목표로 운영 중이다. 다만 1기(키와니 원전)는 201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셰일가스 붐의 여파로 경제성을 잃었다는 판단하에 2013년에 정지되었다.

 그런데 이들과 동일한 원자로형인 고리 1호기에 대해 당초 운영허가 기간을 30년으로 정한 것은 감가상각비의 조기 회수에 그 취지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1970년대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따라서 고리 1호기도 계속 운전에 대한 엄밀한 안전성 평가는 가동 40년이 되는 2017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맞다. 더구나 미국에서는 이들 6기 원전을 포함해 74기의 원전이 40년 이상 계속 운전 허가를 받았다. 30여 기의 원전은 이미 40년 이상 가동 중인 사실을 고려한다면 고리 1호기도 40년 이상 계속운전을 추진할 당위성이 있다.

 둘째, 원전 해체기술은 건설기술보다 훨씬 쉽다. 방사능 관점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사용후 핵연료를 인출해 별도로 안전하게 관리하고, 방사능에 오염된 원전 설비는 방사능이 감소되기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해체하되 방사능 오염 정도에 따라 분류해 적절하게 처리하면 된다. 물론 방사선 환경하의 작업 과정에서 원격로봇작업, 제염 및 해체 작업 등에 관련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미 수십 개의 원자로를 폐기하면서 이런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이미 존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고리 1호기를 실험 대상으로 폐로 기술을 축적하고 세계 폐로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은 성공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고리 1호기가 갖고 있는 잔여 가치를 고려할 때 막대한 낭비를 초래할 것이다. 이 계획은 앞으로 40년 운영허가 기간이 종료될 우리 나라 원전을 모두 정지시켜 해체시킨다는 전제에서만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다.

 셋째, 원자력 발전은 장기적으로 국가 에너지를 어떤 비율로 섞을 것인가(Energy Mix)라는 관점에서 증감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원자력 발전은 온실가스배출 저감과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다. 환경 보전과 국가 에너지안보 확보 측면에서 충분히 큰 비중을 담당해야 한다. 이는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고 신재생에너지 활용에 불리한 지형적인 여건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특히 더 중요하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한수원 비리로 인해 국민의 원자력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다고 해서 원전을 순차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탈핵 진영의 논리에 동조해 정치적 고려 차원에서 원자력 정책을 결정하면 국가의 백년대계가 무너질 수 있다.

 이번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정지권고 결정은 백년대계를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고려의 성격이 짙다. 1호기에 대한 계속 운전 결정 여부가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소관업무인지도 의문이지만,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이번 결정이 충분한 숙의를 거치지 않고 졸속 결정된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값싼 셰일가스로 인해 유가가 하락하고 세계의 정치외교 판도가 변하고 있는 이 시대에는 각 에너지원의 경제성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된다. 더 사용할 수 있는 원전들을 잘 운영해 전력생산을 계속하는 것이 경제적임은 분명하다. 경제적인 전력원인 원자력은 국가 경쟁력의 큰 기반이 되어 왔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탄소세 부담을 줄이는 데도 막대한 기여를 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도 번영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차원에서 원전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므로 경제성에 방점을 두고 계속 운전을 추진하되 확실한 안전성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원전의 안전성을 철저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계속 운전을 준비한 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순리다. 이러한 순리에서 어긋난 이번 결정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앞으로 고리 1호기 이후 다른 원자로에 대한 폐기 결정을 할 때 이 같은 졸속 결정이 재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