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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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사회 윤리의 근본을 흔드는 두개의 상징적 사건을 우리는 요즘 목격했다. 「거화」 「진로」라는 두 기업의 내부 분란, 그것도 가족·혈연끼리의 「싸움」이었다. 이들 두 기업의 분쟁사태에서 볼 수 있는 우리세태의 단면은 실로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두 기업의 분쟁은 각각 부자간 혹은 4촌 형제간 이해다툼이었으며 근본적으로는 우리사회의 기본윤리체계를 짓밟는 부도덕의 표현이란 점에서 같다.
우리사회를 지탱해온 기본윤리의 가장 으뜸은 「부자유친」의 관계다. 그것은 흔히 동양사회만의 윤리적 상도인 것으로 오해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오늘 서구 사상의 중핵인 헤브라이즘에서도 인간윤리의 절대적 가치 척도가 되고 있다.
특히 유가적 전통을 중시했던 동양사회에서는 부자관계가 모든 관계의 기본 틀이 되었다.
그 관계는 삼강과 오륜에서 가작 강조되었으며 그 관계의 실제적 표현인 『효는 만덕의 으뜸』이 교육의 지표가 되었다.
오늘에 와서 전통윤리의 덕목들은 흔히 시대착오적이며 고리타분한 구호처럼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오늘이라고 해서 「부위자강」이며 「부자유친」의 질서가 과연 무의미한 것인가.
『아버지는 자식을 위한 벼리가 된다』는 것은 시대가 흐른다고 달라질 것이며 『부자는 친애가 있어야한다』는 말이 어찌 세월 따라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서경」에는 『만약 그물에 벼리가 있으면 질서가 있게되고 흐트러짐이 없게 된다(고망재강유조이부문)』는 글귀가 있다. 이는 나라에 근본 법도가 서면 바로 사회의 혼란이 없어진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그처럼 아버지를 벼리로 삼으면 한 가정이 질서와 평화를 이룰 수 있으며, 그럴 때 바로 사회의 기강과 법도도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마찬가지로 형제사이의 관계도 부자에 못잖은 혈연관계로서 질서와 의리를 두텁게 해야할 친족관계다. 비록 4촌 형제간이라도 친족의 의리는 지켜져야 한다.
부자나 형제는 인간윤리의 마지막 보루다. 지극한 마음으로 이를 중시하고 끈기있게 지키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사람된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까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어버이는 자식을 위해 숨기고 자식은 어버이를 위해 숨기면 곧은 것이 그 가운데 있다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
아마 공자가 다시 눈을 떠서 「부위자고」, 「자위부고」와 같은 부자상쟁의 세태를 보면 땅을 칠 것이다.
인정과 도덕정신은 사회질서의 기둥이요 뿌리다.
가령 판자를 이어 만든 나무통은 대나무 테로 단단히 죄어져 있다. 그 테가 느슨해지면 통이 당장 부서질 것(강색유이)은 정한 이치다. 도덕은 바로 사회를 묶는 대나무 테와도 같은 것이다.
특히 한 기업체의 회장이나 사장은 다만 가정과 기업의 장만이 아니고 사회의 공인이다. 교양과 인격을 갖추어 행동해야할 사람이다.
그들의 다툼은 가정의 불화를 조성하는 것만이 아니고 수백, 수천 종업원의 안위를 좌우한다는 것도 깨달아야한다. 사회지도층으로서 처신이 부끄러운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이들의 비윤리적 작태가 국가와 사회의 건전한 생활기풍을 저해할 것도 물론이다. 그들은 사회적 범법으로 지탄되는데 그치지 않고 지금 강상죄인이 되는 처지에 이르고있다. 이 사건을 보며 우리사회의 윤리의식을 회복하는 자성과 애친의 노력이야말로 이 시대의 근본을 바로잡는 가장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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