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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대표적 외국적기업 서독지멘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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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몸속 어디가 아파 병원에 가면 으례 X선 사진을 찍는다.
바로 이런 방사선 의료기기 세계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가 서독의 지멘스다.
1천여종의 크고 작은 의료기기를 만드는 지멘스의 의료공업부문이 지멘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3년 현재 총매출액의 9%. 그러나 이같은 의료부문이 지멘스의 기둥은 아닌 셈이다.
지멘스는 조그마한 주방기구에서부터 수십t에 이르는 각종시설과 컴퓨터산업에까지 손을 뻗고 있는 서독 제1위, 세계29위의 기업. 지멘스의 제품들은 뚜렷이 구분된 6개의 사업부문에서 만들어진다. 통신기기·중전기기·의료기기·전기설비·정보처리·전자부품등이 그 6개 사업부다.

<의료기기 20%점유>
지멘스의 얼굴상품은 통신기기와 중전기기다. 이 두 부문은 지멘스 83년도 매출액의 28%씩으로 모두 56%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이 의료공업 9%, 전기설비 8%, 정보처리 6%, 전자제품 4%, 기타 17%다.
이들 6개 사업부는 철저한 권한위임으로 각기 독립적인 사업활동을 벌인다. 예컨대 우리나라에서는 금성통신이 지멘스의 통신기기사업부와 합작계약을, 현대중전기는 지멘스의 증전기기사업부와 기술제휴를 맺었다. 각 사업부의 독립성을 알수있다.
지멘스가 세워진것이 1847년, 기업역사가 1백37년이나 된다. 83년 현재 지멘스의 모습을 살펴보자. 매출액 1백57억2천4백만달러, 순이익이 2억9천6백만달러로 31만3천명의 종업원을거느리고 있다. 매출로 따지자면 우리나라 최대기업인 현대와 삼성 두 그룹을 합친것과 맞먹는 규모. 순이익을 비교하자면 현대와 삼성에 럭키금성그룹을 더해야 한다.
지멘스는 또 세계 1백23개나라에 자회사·지점·합작회사·판매회사등을 두고있다. 50%이상 투자한 회사만해도 국내 34개에 세계 1백31개나 된다. 이중 현지에서 직접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27개나라에 98개 있다.
한마디로 다국적기업이다. 이회사의 매출액 가운데 수출비중이 50%를 넘어서기 시작한것은 지난76년의 일. 그후 계속 수출비율이 늘어났다. 83년 매출액중 수출비율은 56%에 이르렀다.
이같은 국제화에는 두가지 이유를 생각할수 있다. 하나는 지멘스의 적극적인 수출노력, 또하나는 국내판매 부진에 따른 돌파구를 수출에서 찾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출의 절대액이 순조롭게 늘어난 것으로 봐 우리나라 기업같이 수출에 힘입어 성장하고 있다고해도 좋을것이다.
지멘스는 원래 네덜란드의 필립스사등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기업으로 알려져있다.
31만3천명의 종업원만해도 이중3분의1정도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이가운데 서독본사에서 나가있는 종업원은 전문기술자나 관리자로 1%에 지나지 않는다.
이같은 국제화는 어떻게 이룩했을까. 앞서 말한 사업부문간의 철저한 권한위임은 상하부조직에도 적용된다. 그야말로 불간섭·자율주의를 하나의 조직원리로 삼고 있다. 이같은 경영정책이 대기업 특유의 경직화로부터 이 회사를 구해주고 있다.
또 지멘스가 그 큰 몸뚱이를 잘도 움직이는데는 크게 두가지의 비결이 있다. 하나는 의욕적인 연구개발이고 또 하나는 끈질긴 사원에 대한 교육훈련이다.
지멘스가 자체 연구개발에 의한 기술에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나를 나타내는 일화가 있다. 2차대전때 소련군이 지멘스 공장의 기계를 뜯어가 버렸다.
이때 지멘스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소련군이 기계는 뜯어갈수 있을지 몰라도 머릿속에 든 기술만은 가져갈수 없을것』이라고 자위했다고 한다.
이렇듯이 지멘스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워가기위해 꾸준히 새 상품의 연구개발에 힘쓴다.「우리 생활에 변혁을 가져오는 첨단기술과 도구를 항상 앞서서 개발한다」는 것이 지멘스의 목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우 연구개발에 들이는 돈이 매출액의 2%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물론 연구개발비는 계산에 따라 차야가 날 수도 있지만 지멘스의 경우 8∼9%를 항상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83년 연구개발비는 14억달러로 매출액의 9%정도다. 83년도 우리나라 30대기업의 총연구개발투자비인 1억4천5백만달러(총매출액의 0.23%)의 10배에 이르는 규모다. 또 연구개발에종사하는 기술인력은 3만명이다. 이밖에 해외에서도 4천명 정도가 연구개발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 지멘스가 집중적으로 연구, 개발하는 분야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 프로세스, 컴퓨터 소프트웨어, 컴퓨터에 의한 설계와 제작(CAD·CAM)등이다.
한편 지멘스가 사원교육에 열심이라는것도 널리 알려져있다.
지멘스의 경우 5개의 본부기구가운데 인사부문이 있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센터는 베를린·뮌헨의 두 본부를 중심으로 서독안에 4개가있다. 또 각 공장 해외영업소등에도 교육시설이 마련돼있다.
지멘스의 교육은 영어를 중심으로한 어학교육으로부터 일반교양·전문지식·기술등 여러가지 직업훈련으로 이뤄진다.
『채용보다도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지멘스의 인사담당자는 말한다.
매년 6만7천여명의 종업원이 7천개 정도의 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교육에 드는 투자도엄청나 82년 한해에 4억3천2백만 마르크를 썼다.
밑바닥에서부터 이렇게 철저한 지멘스가 크게 혼이난 적이있다.
지멘스가 컴퓨터부문에 진출하면서 미국의 RCA와 제휴했다가 RCA가 이 부문에서 철수하는통에 그야말로 바람을 맞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뒤처리에 있었다.
지멘스는 그뒤 컴퓨터시장을 휩쓸고있는 IBM방식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만 것이다. 이것이 최근 세계에「지멘스 쇠퇴」의 인상을 남긴 최대의 원인이다.
이 실패의 해결책으로 지멘스는 지난78년부터 일본의 후지쓰(부사통)로부터 대형 컴퓨터를 지멘스상표로 서독에 수입하고 있다. 이같은 궁여지책도 서독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후지쓰의 제품이 IBM방식이어서 RCA를 산 사용자들은 소프트웨어체계를 바꾸는등 많은 추가투자 부담을 안았기 때문이다. 어떤사람은 이에대해『자동차에 이어 컴퓨터까지도 일본에 먹혀버렸다』고 말한다.

<제품수송에 큰 애로>
이같은 지멘스는 또다른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지멘스의 공장들이 공산권속의 고도인 서베를린에 위치하고있는 점이다.
서베를린은 고립도시여서 원료나 제품의 수송에 많은 시간이 걸려 납기를 맞추는데 커다란 장애가 되고있다.
서베를린에는 지멘스의 통신단말기공장, 교육센터, KWU(발전기·원자력발전등 제조회사), 전구공장등의 자회사군이 몰려있어 이지역의 길은 지멘스 도로라고 불려질 정도다.
그렇다고 지멘스는 서베를린에서 발을 뺄 수도 없는 처지다. 이곳이 지멘스의 발상지이고전전까지는 명실상부한 지멘스의 본사였다는 향수때문만은 아니다.「베를린의 별」이라고까지 불리는 지멘스가 버틴다는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므로 경제적판단만으로 옮길수는 없다. 지멘스의 서베를린 잔류는 군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상징인 대기업의 존재로서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지멘스의 약점은 31만여명의 종업원중 3분의1인 10만명정도가 각국의 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의 국적을 따지면 50개정도 된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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