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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관할권 행사 등에 관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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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측의 주선으로 판문점을 관광 중이던 소련인 1명이 23일 군사분계선을 뛰어넘어 유엔군사령부쪽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한 사건은 지난 81년10월 중립국감시위원단에 근무하던 체코병사 1명이 똑같은 방식으로 망명해왔던 전례가 있어 그에 준해 처리될 것 같다.
우선 법률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지닌 판문점이란 지역에서 발생한 만큼 사건처리의 관할권을 누가 갖느냐는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판문점은 휴전협정에 따라 휴전협정 당사자인 북한과 유엔군사령부의 공동경비 구역이다.
그래서 판문점은 법률적으로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북한과 유엔군이 관계된 지역인 동시에 유엔군과 한국이 결부된 지역이다.
따라서 한국과 유엔군, 다시 말해 한국과 미군이 결부될 경우는 한미 행정협정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
한미행정협정에는 미군 기지 내에서의 범법에 대해 미군과 미군 군속의 직무상범죄는 1차적 재판권이 미군에 의해 행사되며 직무 외의 범죄는 한국이 갖도록 명시돼 있다.
이번 사건은 소련인이라는 제3국인에 의해 일어난 만큼 관할권은 당연히 영토 주권국인 한국에 있다.
체코병사의 망명 당시도 미측에서 『1차적인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던 전례가 있다.
그러면 제3국 망명요청을 해온 외국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는가. 크게는 ▲국내의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한 후 제3국으로 추방하거나 처벌없이 추방하는 방법 ▲비록 외교관계는 없으나 소련에 넘겨주는 방법 ▲정전위를 통해 다시 북한지역으로 돌려보내는 방법 ▲당사자의 의사대로 제3국에 보내는 방법 등이 있을 수 있다.
이중 어느 경우든간에 외교적 문제가 따른다. 특히 상대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소련인 만큼 법률적인 점뿐 아니라 정치적인 고려가 따라야 한다.
처벌후 추방, 또는 다시 되돌려 보내는 경우 대소관계라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이나 인도주의와 정치범 불인도 원칙이라는 차원에서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반면 본인 의사대로 직접 미국으로 보내는 경우는 인도적 견지에서는 환영을 받겠지만 대소관계 등을 고려할 때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감안해 이번 경우도 지난번 체코병사 때처럼 망명자를 제3국으로 가기 원하는 일시적 피난자(Temporary Refugee)로 간주,「유엔난민절차」에 따라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문제의 본질이 정치적인데서 인도적인 관점으로 옮겨지며 2차 관할권도 난민구제를 위해 설치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UNHCR)으로 이관된다.
이번 사건은 유엔사 관할지역 안에서 소련인에 의해 발생된 만큼 각별한 관심을 쓰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소련이 선수들의 신변안전을 이유로 아직 참가확답을 하고 있지 않은 마당에 이같은 사건이 발생한 것은 난처한 일이다.
더구나 건너오는 과정에서 남북간의 총격전으로 사상자가 난 것이 모처럼 진행중인 경제회담·적십자 회담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돌발사건이고 남북한간이 아닌 유엔사와 북한간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남북대화의 큰 흐름을 흐뜨리지는 않으리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53년 정전이후 지금까지 판문점등 비무장지대에서의 총격사건으로 미군 60여명, 한국군 4백여 명이 숨졌으며 이번 총격사건은 76년 8월18일 미군장교2명이 살해된 북괴 도끼 만행사건이후 최악의 사태라고 서울의 서방 외교관들은 분석했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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