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생 환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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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구름을 스케치하기 위해 남북으로 뚫린 시원한 창가를 왔다갔다하며 그릴만한 구름모습을 찾아 서성거렸다.
흡사 야산 꼭대기에 홀로 앉아 부운의 바다 아래 있는 듯한 기분에서 가벼운 현기증마저 일었지만 내가 찾는 구름은 없었다.
먼 옛날 어느 여름날에 아이스크림같이 보여 먹고싶었던 뭉게구름도 없고 당장 화폭에 들어갈 스마트한 유선형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또 서쪽 하늘에 영락없이 잘 생긴 백마가 뛰어가듯 움직이는 구름도 없고 인자한 「슈바이처」박사나 문명의 아버지 「에디슨」의 초상을 방불케 했던 구름도 보이지 않았다.
뜬구름이라도 부여잡고 한을 달래고 삶의 의욕을 찾아보며 시정을 느꼈던 시대는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차츰 독종이 되어가고 스스로 무신경화 되었다는 의식 때문에 오뇌하는 자세에서마저도 차차 멀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
예술가는 평생 공부하다 죽어야하는 업을 지녔으니 나이가 없다는 말을 진리라고 여겨왔던 나는 자기 생일도, 나이도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늦가을 객지에서 우연히 쳐다본 보름달에서, 또는 어머니 정성으로 아침밥상에 느닷없이 미역국이 올라 있을 때, 아 그렇구나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이 태어난 날을 느끼며 계면쩍어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누가 일일이 따져보는 것인지 비단 나만은 아니지만 갑자생 환갑 운운하며 어딘가 지상들에 실렸던가, 「회갑전 하지 않소?」라는 전화가 잦을 때는 우울했다. 타의 건 자의 건 회갑전이니, 회갑논문집이니 하고 공개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말없는 밀보리싹처럼 무척 빈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나에게 있어 그렇게 좋은 해는 아니었다.
오래 전 나는 정에 흘러 문인화의 개구리나 붕어타령에 못 이겨 끙끙 앓면서 소품들을 그냥 그려준 일이 잦아 꽤 남발했었다. 인과응보라 할까, 오늘날 그 일부가 사본이 되어 구도만 좀 다를 뿐 내 그림과 거의 같은 개구리 대작(50호 80호)들이 서울·대전·지방 할 것 없이 거래되고있는 것 같다.
경주에서 나온 80호엔 내 성과 맞췄는지 개구리 1천 마리가 그려져 있다고 하니 보지는 못했지만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그런 큰 가짜 개구리 떼에 부딪친 선량한 분들이 부디 속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공개되지 않는 이런 것들이 나의 소위 회갑기념이 된 선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노환의 어머니가 『나가 니 환갑 나이가 되도록 살고 있구나와…』하며 우셨다.
어디선가 조용필의 『눈물의 파티』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는 보다 건강하고 싶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예술가의 진리를 신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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