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메르스대책본부에 외부전문가가 모두 의사인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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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무엇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 하는가'라는 화두는 정치심리학, 경제심리학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다. 동시에 두 가지 유형의 공통된 답을 제시한다. 상황과 성향이다. 상황은 과거에 겪었던 경험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판단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논리다. 성향은 지속적이고 일관된 가치관, 다시 말해 편향과 편견이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논리다.

최근 메르스 사태를 보면, 국민이 처해 있는 상황과 정부의 일관된 성향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몇 일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정부의 메르스 정보공개와 관련하여 국민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사회적 혼란이 있더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응답(76%)이 '순차적으로 공개하거나 공개하면 안 된다'는 응답(21%)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반응은 대통령 국정평가와 여야지지, 이념성향의 차이와는 상관없이 나타났다. 정부는 왜 정보공개를 꺼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혼란에 대한 우려에서 찾을 수 있다. 메르스도 통제하기 어려운데 정보를 공개하면 사회적 혼란까지 가중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가 있다. 정부가 종합대응컨트롤타워에 외부전문가를 참여시켰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의사다. 눈앞에 닥친 전염병을 막는데 급급한 것이다. 정부의 대응은 마치 진료과정에서 환자상태보다는 의료차트에만 신경을 쓰는 실수와 비슷하다. 세계보건기구에는 전염성이 높은 질병을 대처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보건당국의 신뢰를 유지하는 문제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신뢰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3가지 방법이 있다. 정부와 언론, 병원의 역할이 동시에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사회심리학전문가, 도시통계학전문가, 커뮤니케이션전문가, 기록관리학전문가 등을 종합대응컨트롤타워에 참여시켜야 한다. 의학외적 문제들을 파악하고 조언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의사결정구조에 참여시켜야 한다. 정부가 메르스와 싸우는 이유는 메르스 퇴치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언론은 신속보도보다는 과학보도, 데이터저널리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병원에서 확진된 환자만을 모수로 하여 사망자를 계산하면 치사율이 높아 질 수밖에 없다.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예상확진환자까지 확률적으로 계산하여 치사율을 계산한다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한때 언론이 메르스 치사율을 40%까지 보도했다. 또 시간단위로 추가사망자를 보도하는 것만큼이나 사망자가 메르스에 걸리기 이전의 인구사회학적 특징과 주변상황, 건강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이는 정부가 메르스 확진병원의 이름을 밝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병원이다. 병원은 격리상태에 놓여 있는 환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전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메르스 의심환자도 안심하고 병원을 찾을 수 있고, 3차4차 감염도 최소화할 수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보면 격리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면서 부정적인 단어이자 공포감마저 느끼게 한다.

여론조사를 하나 더 했다. '미군의 탄저균 실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소한 우리정부의 동의를 얻어 실험을 했어야 한다'는 응답(39%)이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으로는 '최소한 실험하기 이전에 우리정부에 사전 통보라도 했어야 한다'(29%),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나라에서 실험은 안 된다'(23%), 북한의 핵위협 등 남북대치상황에서 미군의 실험은 불가피하다(7%) 순이었다. 최소한 미군이 실험을 하려면 아무도 몰래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68%였다. 정보의 투명성을 요구한 여론은 메르스나 탄저균이나 비슷한 양상이다.

'어떤 일이 얼마만큼 진전되었는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상황이 어떤지를 있는 그대로 털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인 빌게이츠의 성공경영 10계명 중 하나다. 늦은 출근길에 이를 실천하는 사람을 만났다. 지하철에서 행상이 마스크를 팔고 있었다. 방진마스크 3장에 만원이었다. 가격이 좀 비쌌지만 꽤 많이 팔았다. 이보다 놀라운 사실은 지하철 한 칸, 승객모두가 행상이 이야기하는 메르스 예방법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마치 대통령의 연두교시를 듣는 듯 집중했다.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팔던 행상이 보여준 힘이 아마도 정부도 보여주지 못한 정보공유의 힘일 것이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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