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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박정희를 독재자로 비난했지만 근대화 업적 이룬 ‘위대한 인물’ 로도 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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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경재

『김형욱 회고록』은 박정희 대통령과 그 정권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한 냉정한 기록인 것처럼 포장돼 왔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부터 84년까지 미국 뉴욕의 한인 상대 언론인 ‘독립신문’에 박사월이란 필명으로 연재됐다. 한국에선 금서였다가 민주화 시기인 87년 말 세 권으로 출간됐다. 300만 부가 팔리는 공전의 베스트셀러였다.

박 대통령의 18년 정권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 부족하고 6년3개월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가 회고의 주체인 데다 당시 반독재 민주화의 시대 분위기가 김형욱 회고록의 수요를 자극했다. 이 책은 그 후 숱하게 쏟아져 나온 60~70년대 정치 다큐멘터리, 각종 회고록, 현대사 평론, 학술논문의 1차 자료로 인용됐다. 김종필(JP) 전 총리는 김형욱 회고의 상당 부분이 허구이거나 과장임을 증언하고 있다. 김형욱 회고록은 JP의 입을 통해 교정될 필요가 있다. 77~79년 김형욱의 구술 회고를 정리한 박사월씨의 실제 이름은 김경재(73)씨다. 김경재씨는 반(反)박정희 운동을 하다 김대중 대통령 때 재선 국회의원(1996~2004년)을 했다. 지난 2월부터는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장관급인 청와대 홍보특보를 지내고 있다. 다음은 김 특보와 인터뷰.

 - 김형욱 회고록엔 당신의 생각이 많이 반영된 것 같다.

 “맞다. 3분의 1은 내 생각, 3분의 1은 김형욱씨 얘기, 나머지 3분의 1은 나와 김형욱씨의 토론 결과다. 회고록에 들어 있는 ‘미 국회 증언록’은 다 내가 썼다.”

 - 김형욱은 자기가 북한 간첩 황태성을 미국 정보기관에 잠시 넘겨줬다고 회고했는데, JP는 초대 정보부장 시절 본인이 피어 드 실버 한국지부장한테 인도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렇게 충돌하는 얘기가 여러 건 있다.

 “그 부분은 김형욱이 얘기한 대로 썼을 뿐이다. 진실성은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 김형욱이 회고록을 쓴 목적은 출판이 아니라 박정희 정권과 거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김형욱은 생전에 출간을 하지 않았다. 출판은 그가 실종된 지 3년이 지난 뒤 나의 결심으로 한 것이다. 김형욱은 파리에서 실종되기 전 박정희 정부 측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고 회고록 원고를 넘겨준 것으로 나는 파악하고 있다.”

 - 그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태도는.

 “박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난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근대화 업적 등에 대해 ‘위대한 인물’이라고 했다. 위대한 독재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김형욱 경질=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은 1969년 3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통과된 사흘 뒤 전격 경질됐다. 김형욱은 공화당 4인 체제와 함께 3선 개헌 작업을 밀어붙였으나 논공행상에서 쫓겨난 셈이었다. 그는 자신이 박정희에게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 사냥을 끝내고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당했다고 판단했다. 박정희와의 결별과 배신의 씨앗은 그때 뿌려졌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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