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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네킹 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사람을 닮기 시작한 마네킹이 많아지자 마네킹을 닮기 시작한 사람들도 많아졌다. 옛날 같으면 주둔부대 정문에 부동자세로 서있는 위병 아저씨가 마네킹 같아 장난질하던 어린이가 있었지만 요즈음 어린이들은 웬만한 마네킹 앞에서도 놀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쇼윈도에 진열된 마네킹을 닮으려 한다. 「풍채」는 어디 가고 「모양」만 남았는지 거리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살아있는 표정을 느끼기보다 꾸민 모양이 앞서 옴은 필자의 전공이 「보는 것」이기 때문일까.
파리의 유명한 물랭루지 쇼를 보려면 결코 앞자리를 잡지 말라는 농담이 있다. 앞자리에 앉아서 캉캉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무표정한 얼굴과 기계 같은 동작을 확인하게 되면 쇼의 열기가 사라진다는 짓궂은 친구의 충고다.
하기야 텔리비전의 쇼프로에 나오는 안무도 이미 무대효과의 한 요소로 바뀐 지 오래되지만 로봇이 나오고 컴퓨터가 나온 뒤 인간도 그것을 닮아 점차 기능화 되고 있다. 기계의 인간화가 인간의 기계화가 되었다고 「베이컨」은 일찍부터 개탄하였지만 복제시대이후 산적한 기성품들의 홍수는 자연적 풍경을 가려 버리고 우리들조차 그러한 기성품의 하나로 간주되는 것을 오히려 당연시하고 있다.
체육행사 때마다 등장하는 매스게임을 보면 일사불란한 완벽성만 지향한 나머지 참여자의 자연스러운 열광이 항시 빠져 있어 프로야구에서나 볼 수 있는 열광을 고무하는 일이 아쉽게 느껴진다. 아무리 매스를 앞세우는 게임이라 하지만 그것을 하는 것이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개개인의 열광 없이는 자칫하면 참여자에게 무익한 피로만 초래하기 쉽다.
만약에 교통사고를 우려하여 수학여행을 중단하고, 운동장이 지저분해 질 것을 꺼려서 가을운동회에 밤 같은 음식까지 규제한다거나, 입시를 위하여 4시간 수면에 학예제·미술제·음악제를 외면하는 학교가 있다면 기성세대가 학교교육에서조차 청소년에게 주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뜻에서 오늘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광을 진작시키는 일이라고 역설한 화가 「피카소」의 말을 단순한 예술가의 말이라고 일축하기보다 누구나 한번씩 되씹어 보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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