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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 언니가 돌아왔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여성중앙] ‘토토가’ 열풍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토토가’의 히로인 이본의 활약은 여러 방송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JTBC 새 예능 ‘엄마가 보고 있다’의 MC를 맡아 첫 녹화를 마쳤단다. 자신을 줄곧 담금질해왔다는 그녀를 만나 지난 몇 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대적 외모, 화끈한 언행, 언뜻 생각하면 패리스 힐튼만큼이나 자유분방하게 사는 여성일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본 그녀는 오히려 보수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전통적 가치에 충실했다.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자기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애정을 품은 존재를 위해선 자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까만 콩’ 이본은 그런 사람이다. 인터뷰 내내 그녀는 몰티즈 종으로 보이는 강아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어디 맡겨놓을 법도 한데 굳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니, 그 작은 생명에 대해서까지도 자신의 책임을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출연 중인 방송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Q : 여기 오기 전에 잠깐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골프 방송 진행하는 것을 봤어요
아, 그거요? 골프 방송은 2년 전에 찍은 것을 재방하는 거예요. 지금은 ‘나는 가수다’랑 ‘엄마가 보고 있다’를 하고 있어요.

Q : 어린 시절의 이본이 궁금합니다. 어느 인터뷰 기사를 보니 엄마랑 외출했다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지 않으면 집에 다시 돌아가자고 했다면서요
중고등학교 때 얘기예요. 그 시절 교복이 마음에 안 들어 15일 동안 학교에 안 간다고 버틴 적도 있었어요. 엄마 말에 따르면, 생선도 예쁘게 구운 것, 딸기도 예쁘게 생긴 것만 먹고 상처 난 건 안 먹고 그랬대요. 비주얼에 많이 집착을 하는 스타일이었나 봐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는 게 뭔지 알고부터는, 길에서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으면 속으로 ‘내가 옷을 잘 못 입었나?’ ‘오늘은 NG인가?’ 생각하면서 집에 다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곤 했어요. 아무리 약속이 급해도요. 언니가 둘 있는데 체격이 비슷해요. 언니들 옷을 많이 빌려 입었지요. 언니가 의외로 흔쾌히 옷을 내주었어요. 둘째 언니가 저보다 비주얼이 훨씬 더 좋아요. 그 언니가 자기 옷을 내주며 코디까지 해줬어요.

Q : 그 어린 시절부터 나르시시스트였군요. 남이 나를 쳐다봐주기를 바라는 게 바로 연예인 기질이지요. 당시에 그걸 알고 있었나요
아뇨. 저는 그냥 어린 마음에 사람들한테 예쁘다는 소릴 듣는 게 좋았을 뿐이지, 당시 내게 끼가 있다거나 연예인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그건 방송을 해보고 알았어요.

Q :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결국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잖아요
그때는 명함으로 길거리 캐스팅을 많이 할 때였어요. 여러 번 명함을 받았는데, 엄마가 남자들이 준 명함은 매번 찢어버리셨어요. “도둑놈이다, 사기꾼이다” 하시면서. 그러던 어느 날 여자 분한테 명함을 받았어요. 집에 가서 “이번엔 여자에게 받았다”고 했는데, 엄마가 “그래도 안 된다”고 찢어버리셨어요. 명함을 받을 때 그분께 집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는데, 그분이 먼저 집으로 연락을 해와서 맥스웰 캔 커피 광고 모델을 하게 됐어요. 그게 스물한 살 때의 일이었지요. 첫 광고를 손창민씨와 찍었고, 그 경력으로 SBS 탤런트 시험을 보게 됐어요. 남동생이 “그럼 TV에 나오는 연기를 한번 해보라”고 권했거든요. 제가 남동생을 많이 예뻐했는데, 그 애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소원 들어준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됐지요.

Q : 연기자 시험을 보기 전에 연기 수업은 어떻게 했나요
연기 학원을 다닌 건 아니에요. 커피 광고 촬영했던 경험 하나만 가지고 카메라 테스트를 하거나 레슨을 받지 않은 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보게 됐는데 1차, 2차, 3차까지 통과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미 시험에 붙은 줄 알고 옷도 막 튀게, 목이 파인 옷에 머플러를 두르고, 옆이 트인 긴 치마를 입고 갔거든요. 그런데 다들 정장을 입고 온 거예요. 알고 보니 심사가 4차까지 있대요. 그래서 떨어지는가 싶었지요. 그때 스물 몇 명이 3차까지 붙었는데, 심사를 보던 이장수 PD님이 제 바로 앞의 친구에게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게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 친구는 강아지라고 대답했어요. 그때 저는 저 질문을 나한테 한 번만 해주기를 속으로 바랐어요. 그런데 정말로 같은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대답했어요. “남자요.” 아마 그것 때문에 붙었을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의상을 입고 왔으니 떨어질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의 인터뷰가 너무 평이해서 직감적으로 여기서 튀어야 한다고 느꼈지요. 나중에 부장님이 들어오시면서 “이 중에 남자가 좋다고 했던 애가 누구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생각대로 전략이 딱 먹혔던 것 같아요.

Q : 공채 연기자가 되고 6편의 드라마를 찍었어요. 별다른 연기 훈련 없이 곧바로 실전에 들어가서 힘들지는 않았나요
리허설할 때 동선을 잘 봐두었다가 ‘이 선에서 벗어나면 혼나겠다’는 생각으로 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 ‘느낌’을 할 때는 김민종, 손지창씨 빼고 전부 신인이어서 저만 못 하는 게 아니라 다들 못 하니까 감독님이 다 앉혀놓고 리허설을 여러 번씩 하곤 했지요. 눈높이가 고만고만한 친구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해보며 고민한 게 합이 잘 맞아서 드라마도 잘됐었던 것 같아요.

Q : 꼭 연기를 해야겠다는 욕망보다 그냥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욕망이 더 강했던 것 아닌가요
예. 그때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반드시 연기 쪽으로 나가겠다고 분야를 확실히 정한 건 아니었어요. 카메라 앞에 서고 사람들이 나를 봐주는 것에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아요.

Q : MC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요
사실 드라마 촬영을 할 때 선배님들한테 엄청 혼났어요. 광고 찍느라 촬영에 피해를 주는 것까지는 이해해 주셨는데, MC 한다고 빠지고, DJ 한다고 빠지는 건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저는 다 하고 싶었어요. ‘내가 NG를 많이 내거나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아닌데, 그냥 하게 해주시면 안 되나?’ 선생님들이 야속할 때도 있었지요. 그때는 정말 야단을 많이 맞았거든요. 연기를 하러 가면 늘 혼이 나니, 점점 쇼가 더 편한 거예요. 재미도 있고. 그때 기획사 사장님께 선배님들한테 만날 혼난다는 얘길 했더니, “야, 그럼 하지 마!” 하면서 드라마에서 빼버리셨어요. 그래서 연기로는 다작을 하지 못하고 쇼 MC 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됐죠.

Q : 그때 진행했던 라디오 ‘이본의 볼륨을 높여요’는 꽤 인기가 있었지요. 대략 어떤 방송이었나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하는 라디오 방송이었어요. 라디오 프로 중에서는 버라이어티 쇼의 성격이 매우 강했던 프로인데 HOT, 신화, 젝스키스, 핑클 등 당대 초호화 게스트들을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프로였어요.

Q : 그렇게 인기 있는 프로를 하다가 돌연 은퇴한 이유는 뭐였나요
저는 비교적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사람이거든요. 가족들 사이에서 ‘사람은 앞뒤가 다르면 안 된다’고 배우며 자라서 연예인들의 이중적인 면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고 선배인데, 왜 이 사람은 여기선 이렇게 행동하고 저기선 저렇게 행동하지?’ 거기에 맞추느라 저 자신과 끊임없이 타협을 보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자신이 싫었어요. 지식도 바닥이 났고, 기본적으로 발전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거죠. 매일 방송하는 라디오를 그만둬서 정을 떼어내는 게 더 큰 그릇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인 것 같아서, 은퇴라 할 것도 없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만두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Q : 은퇴할 생각으로 방송을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너무 오래 쉬게 됐군요
예. 독일 월드컵 경기들을 다 보고 유럽에서 1년 정도 이 나라 저 나라 전전하다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일을 하려던 시기에 엄마가 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제가 병간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큰언니는 발령을 받아 형부랑 같이 독일 베를린 대사관에 있었고, 둘째 언니는 프랑스, 남동생은 시드니에 있었어요. 그때부터 병간호를 하기 시작해서 거의 7년을 쉬게 됐죠. 이렇게 오래 쉴 생각은 아니었는데.

Q : 중간에 섭외가 들어왔을 법도 한데요
왔었죠. 하지만 그때는 단호하게 거절했어요. 나는 아직 일할 상황이 아니라고. 다음에 내가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때도 나를 찾아줄 줄 알았어요. 그래서 너무나 자신 있게 이렇게 생각했죠.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가 출발할 시점은 내가 정하지, 당신들이 정하는 게 아니다.’ 뭐에 그렇게 자신이 있었는지, 아무튼 기고만장했었지요. 하지만 엄마 간호를 하다가 다시 일을 하겠다고 나왔는데 바깥 반응이 굉장히 냉랭한 거예요. ‘요즘 너보다 튀는 애들은 쌔고 쌨어.’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사실 신인 때부터 힘든 길을 걸어서 스타가 된 케이스는 아니어서 미처 그런 부분을 못 배웠던 것 같아요. 치이기도 많이 치였어요. 그래서 나중엔 ‘아, 그냥 놀자’ ‘내 스타일대로 놀자’ 그렇게 된 거죠.

연기에 몰두하지 못한 지난날에 미련 많다

Q : 쉬는 동안에 충전은 좀 되었나요
일단 유럽 여행하면서 얻은 게 정말 많아요. 제일 먼저 영국으로 갔다가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 6개국에 주로 있었어요. 또 7년 동안 제 의지와 상관없이 음지에서 생활하며 얻은 깨달음도 있고요. 사람 마음을 배려하는 거라든가,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는 자세라든가. 일단 내가 잘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가장 큰 배움인 것 같고, 그 시기에 부모님의 자리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 전에는 내가 이런 직업을 가졌으니 아빠, 엄마는 나 때문에 피곤해도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쉬는 동안 엄마를 돌보면서 ‘보통 내공으로는 이런 직업을 가진 딸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구경하다가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요
예. 제가 유럽 축구를 워낙 좋아해요. 원래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 팬이거든요. 일단 한국 팀 경기 티켓들을 제일 먼저 사놓고, 유럽 팀들의 경기를 보러 다녔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제 옆에 일본인 한 명과 한국인 한 명이 앉게 되어서 서로 친해졌어요. 보러 다니는 경기 일정이 같았고요. 그래서 같이 어울려 다니다가 헤어지면서 한국 가면 서로 연락하자고 했죠.

Q : 축구를 정말 좋아하나 봐요
스포츠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축구를 유독 좋아해요. 아르헨티나의 바티스투타. 보통 여자들은 베컴처럼 잘생기고 멋있는 선수들을 얘기하는데, 저는 운동할 때 빛이 나는, 진짜 운동을 잘하는 선수들이 좋아요. 가령 네덜란드의 다비즈처럼 여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수비수. 여자들은 또 네덜란드의 로벤이라는 선수를 안 좋아할 걸요? 머리가 많이 벗겨졌거든요. 베컴도 좋고, 호날두도 좋고, 다른 잘생긴 선수들도 좋지만, 저는 개성 있는 선수들을 좋아해요. 카를로스 같은.

Q : 다시 복귀한 것이 2011년 콘서트 방송을 통해서였지요
2011년에는 복귀를 의도했던 게 아니었어요. 당시 1996, 1997, 1998년에 활동했던 가수들이 콘서트 방송을 만드는데, 그들이 MC가 이본이었으면 좋겠다며 추천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저도 이들이면 내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저를 기억하고 선택해준 사람들이니까요. 사실 방송 복귀는 ‘닥치고 패밀리’라고 2012년부터 방영된 KBS의 일일 시트콤으로 했어요. 우성 가족, 열성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데, 거기서 황신혜 언니 동생으로 나왔죠. 그때는 제작진이 가진 생각이 저랑 맞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캐릭터가 살지 않고 여러 가지 트러블도 많았어요. 예전 같았으면 다른 사람 쓰라고 하면서 극 중에서 미국 간 걸로 처리하며 빠졌겠지요. 하지만 이번엔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상황을 그냥 받아들였는데, 안되려고 하면 그렇게 모든 게 잘 안되더라고요.

Q : 그러다가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전성기 못지않은 유명세를 다시 가져다 준 것이 역시 ‘무한도전’의 ‘토토가’ 출연이었어요. 그 프로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사실 이미 성공적인 컴백은 포기한 상태였어요. ‘나 정도 끼를 가진 사람들은 널렸구나’ 이렇게 생각하던 차였지요. 다만 언제가 한 번은 때가 올 것 같다는 막연한 믿음에서 몸 관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박명수씨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토토가’를 기획하고 있는데 같이 MC를 보면 안 되겠느냐고. 바로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렇게 녹화장에 갔는데, 정작 가수들을 쳐다볼 수가 없었어요.

Q : 왜죠
그 무대에서 서로 만났다는 건 이때껏 자기 관리를 잘했고, 건강한 마인드로 잘 지내왔다는 증거잖아요. 그 상황이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녹화 전에 그들과 마주치지 않을 생각으로 아예 대기실에서 안 나왔는데 결국 무대 위에서 마주치는 순간 울음이 터져나왔고, 그게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나 봐요. 운이 좋았죠. 저는 운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토토가’를 통해 실감하게 됐어요. 물론 제가 쉬는 동안 스스로 방치했다면 몸이 퍼져서 다시 방송에 출연할 수 없었겠지만, 운이란 건 그렇게 강력한 거더라고요.

Q : 최근 장진 감독의 회사 필름있수다와 계약을 맺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 연기에 전념할 계획인가요
저는 가지고 있는 끼가 너무 많아 연기에 몰두를 잘 못한 케이스라 미련이 많아요. MC도 좋고 DJ도 좋고, 분야마다 매력이 있긴 한데, 제가 방송 생활을 연기로 시작했잖아요. 연기자로 활동할 때는 동시에 다방면의 일을 하다 보니 연기에 100% 전념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동안 연기 쪽으로 신경 써주고 보살펴줄 곳을 원하고 있었어요. ‘토토가’ 녹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우연히 필름있수다에 계신 분을 만나게 됐어요. 이미 이런 얘기가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토토가’ 출연도 마음을 내려놓고 할 수 있었지요. 계약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요.

Q : 그 전에는 소속사가 없었나요
원래 있던 소속사의 대표님이 공황장애를 앓고 계셨어요. 인간적으로 너무 좋으신 분이라 1년 반에서 2년 가까이 의리로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분이 전혀 일을 못 하시는 상황이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어요. 그분 사정도 이해는 가나,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필름있수다에서 제안을 해온 거죠. 그래서 전 소속사 대표님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보내주셨어요.

Q : 새 소속사와는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요
사무실 쪽에 선생님들을 모시며 연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어요. 미니시리즈처럼 젊은 친구들이 나와서 하는 건 젊은 연기자들에게 맡겨 두고, 저는 가족 드라마를 하며 생활 연기자가 되어 장기적으로 다시 연기를 배워보고 싶어요. 제가 아무리 젊어 보여도 마흔이 넘은 나이에 20대 역할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서 극 중 역할들을 생각하는 중이에요. 제가 가야 할 곳은 결국 연기라는 걸 알기 때문에, 급히 서둘러 가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지요.

Q : 영화는 아직 한 번도 출연한 적이 없죠
예. 하지만 영화에서는 강한 개성과 색깔을 드러내며 임팩트 있게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장르에 대한 취향은 딱히 없고요.

Q : 액션이라면 어떨까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실은 액션에도 관심이 많아요. 어느 방송국에서 파일럿으로 여배우들이 액션스쿨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스케줄이 안 맞아서 못했어요. 기초부터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잃은 셈이죠. 하지만 그 프로가 정규 방송으로 편성되면 꼭 해보고 싶노라고 의사를 전달해놓았어요.

Q :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인가요
예. 장르를 따지지 않고 새 영화가 개봉하면 극장에 가서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장르 불문하고 미드도 굉장히 많이 보고요.

Q : 우리 드라마와 미국 드라마의 차이가 있다면 뭔가요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게 있어요. 풀 숏에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진짜 배우라는 거예요. 바스트 숏으로 찍을 때는 화면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은 연기를 안 하잖아요. 미국 배우들을 보면, 달라요. 걸음걸이나 손동작이나 상대방이 대사를 칠 때 눈을 떼지 않는다거나. 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가 다른 배우를 상대하는 스킬을 관찰하는 편이에요. 누군가 이본이라는 연기자를 찾았다면, 그분에게 이본의 리액션은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겠지요. 그런 부분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습니다.

Q : 좋아하는 연기자는 누구인가요
줄리아 로버츠와 미셸 파이퍼를 좋아해요. 그 배우들의 걸음걸이, 웃음, 연기할 때의 모습들을 닮고 싶어요.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하는 영화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이 뭔지 세세히 기억할 정도로 많이 봤어요. 미셸 파이퍼는 무엇보다도 얼굴을 고치지 않아서 좋아요. 각이 졌으면 각진 대로, 물론 자기 나름대로 관리는 하겠지만 기본적인 틀을 고치지 않은 배우들을 좋아해요.

일과 효도가 먼저… 결혼은 우선순위 아니야

Q : 사생활에 관한 질문으로 넘어가죠. 남자 친구와의 데이트는 어떻게 하나요? 역시 평범하게 하나요
만나면 그냥 영화 보고 맛있는 거 먹고, 그게 전부예요. 딱히 대단한 것을 하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요즘 데이트를 잘 못해요. 제가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관계가 삐거덕거리기도 하고요. 저는 이제야 내가 원하는 자리에 돌아왔으니 일을 해야 해요. 제가 부탁했어요. 내가 원하던 일을 어렵게 되찾았으니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당분간 조금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상대는 그 말에 상처받을 수 있겠지요. 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줘야 할 테고. 그래서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굳이 연애 얘기를 꺼내려고 하지 않아요.

Q : 결혼에 대해서 아주 단호하네요
저는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게 어려워요. 제 성격이 뭘 하겠다고 결정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결혼을 한다면 저는 무엇보다도 가정에 충실하려 할 거예요. 몸은 하나인데 아직 효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니, 남자 친구가 우선순위가 될 수가 없죠.

Q : 부모님과 같이 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가족애가 남다른 것 같아요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고, 우리 가족이 그런 토양인가 봐요. 제가 언니도 챙기고 남동생도 챙기고 부모님도 챙겨요. 조카들한테도 다 잘해주려고 하고. 웬만큼 품이 넓은 남자가 아니면 그런 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Q : 그냥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병구완을 해야 하잖아요. 힘들지 않나요
실은 아빠 병간호도 같이 했어요. 아빠도 뇌출혈이 있어서 수술을 두 번이나 하셨거든요. 엄마 아플 때…(이 대목에서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동안 눈물만 글썽인다), 엄마가 제 아킬레스건이에요.

Q : 지금은 건강하신가요
최근에 수술을 또 한 번 했어요. 다시 유방 쪽을. 이번에는 방사선 치료를 7주나 받아야 했거든요. 그 힘든 치료를 4주 정도 하루도 빠짐없이 받으셨는데, 지치신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3주 남았으니 3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치료를 받으시면 내가 막내아들을 볼 수 있게 호주로 보내드리겠다고 했지요. 그걸로 엄마가 버티시더라고요. 7주의 치료를 마치고 결과가 좋게 나와서 지난 4월 1일에 아빠, 엄마를 호주에 보내드렸어요. 좋은 공기 마시고 아들, 손주도 보고 오시라고요.

Q : 에너지가 넘쳐흐릅니다. 지금 현재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공부를 하나요
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 연기학과예요. 주로 유럽 뮤지컬이나 대중 매체에 관한 수업을 들어요. 이번에 공연도 하고요.

Q : 뮤지컬이면 노래도 해야겠네요
뮤지컬에 관한 수업에서 발표를 하면 저는 주로 연기 쪽을 담당해요.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니 노래는 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죠. 대중매체론의 김현수 교수님, 문화평론가 원종훈 교수님 그런 분들께 수업을 듣고 있어요. 이번 5월에 학교에서 공연을 하는데 저는 MC로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아트 앤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매년 한 번씩 하는 정기 공연인데, 이번에 크게 창작극으로 하기로 했어요. 가수들도 출연하고, 원기준씨와 제가 MC를 맡을 예정입니다.

Q : 나이 들어서도 계속 연예인으로 활동할 건가요
카메라 앞을 떠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 한번 호되게 당해서. 이번 일로 ‘내 자리’의 귀함을 알았어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예요. 다만 또 다른 꿈이 있다면, 후배들을 가르치는 거예요. 제가 연기를 하면서 늦깎이 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는 이유가 있어요. 학교에 들어와보니 현역 연기자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드물고 ‘여가 및 레크리에이션’ 전공 교수가 연기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아요. 정식 교수까지는 아니어도 길라잡이가 되어 학생들에게 전문적인 연기를 가르치고 싶어요. 연기를 하면서 사업을 하거나 여러 가지를 하잖아요. 저는 연기를 하면서 학생들,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은 거예요. 석사가 끝나면 과를 바꿔 박사까지 마친 후 현업에 종사하면서 연기를 공부하는 친구들의 길라잡이가 되는 것이 요즘 제 꿈이에요.

Q : 먼 미래의 이본, 60~70대의 이본은 어떤 모습일까요
저는 계속 카메라 앞에 있을 거예요. 건강 관리를 잘해서 누구의 엄마든, 누구의 무엇이든, 어떤 역할로든 계속 여러분을 찾아가고 있겠지요. 저는 정말 제 자신을 아끼거든요. ‘100세 시대’라고 하니, 그 나이가 되어서도 50대로 보인다면 좋겠지요. 그렇게 타에 귀감이 되는 연기자로 남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Q : 마지막으로 ‘까만 콩’이라는 별명은 왜 붙은 거죠? 키가 작거나 피부가 검은 것도 아닌데
아, 제가 어렸을 때 엄청 체구가 작고 얼굴이 까맸어요. 학교 다닐 때 1번이었거든요. 그래서 ‘깜시’와 같은 계통의 별명이 많았는데, 다른 것들은 별로 인상적이지가 않았나 봐요. 그중에서 ‘까만 콩’이 듣기에 임팩트가 있었던지, 기자들이 ‘까만 콩’이라는 수식어를 주로 쓰다 보니 그게 별명으로 굳어졌어요.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거림, 풍자와 위트를 뒤섞은 신랄한 문장 등 100가지 무기로 현상을 해석하는 우리나라 톱 논객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비행기 조종이 취미이고, 고양이 루비를 애지중지하는 감성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중앙에서는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 섹시한 인터뷰를 펼쳐보인다. 날 선 독설과 ‘루비 애비’ 특유의 감성을 넘나드는 인간 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기획 여성중앙 조영재 , 사진 박지홍(ca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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