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격리자·병원 이름, 의사에게라도 공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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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감염자가 늘어나는 근본 이유는 격리대상자와 숨겨진 접촉자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격리대상자에게 메르스 증세가 나타날 때 조기에 치료를 하고, 숨겨진 접촉자를 찾아 격리해서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선 의료인들이 누가 격리대상자인지, 환자가 14개 의료기관(확진환자가 거친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를 두고 의료계와 정부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의료계는 관련 정보를 의료인한테는 제공해야 현장에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림대 의대 한강성심병원 감염내과 이재갑 교수는 “어느 병원에서 어떤 환자가 노출됐는지 정보를 알려줘야 제대로 돌아간다”며 “그래야 문진 과정에서 의심 증세가 있는 환자에게 최근 14개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느냐 묻고, 있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서 감염 우려가 있는 사람을 잡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안암병원 손장욱 감염내과 교수도 “어느 병원이 얼마 동안 문제됐느냐(확진환자를 진료했느냐) 정도만 알려달라는 건데 그것도 안 알려준다” 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정보 유출을 우려해 의료인 제공을 꺼리고 있다. 권준욱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격리대상자 명단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보건소에 보유하고 있다가 의료기관에 호흡기 증상 환자나 의심환자가 있으면 보건소에서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시스템을 구축해 4일 부분 가동에 들어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병원장은 “하루에 수십 명의 환자를 보는데 언제 일일이 보건소에 확인해서 밀접접촉자인지를 체크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감염내과 의사 200여 명이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병원별 확진환자 진료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안전서비스(DUR)다. 이는 환자별로 의약품의 중복과 금기약 처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환자가 다른 질병으로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의료기관에서 항생제를 또 처방할 경우 0.4초 만에 ‘중복 처방’이라는 경고 팝업창이 의사의 컴퓨터에 뜬다. 이 시스템에 격리대상자와 14개 의료기관 명단을 집어넣으면 실시간으로 의사가 격리대상자 여부를 알게 돼 조치할 수 있다. 또 최근 14개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는지 검색하는 기능을 넣으면 그 병원 방문 여부를 알 수 있다.

 메르스 확진환자 36명 중 27명은 정부의 격리 대상이 아니었다. 관리망에서 벗어나 있다가 메르스 증세가 나타나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다 어딘가에서 체크돼 확진 판정을 받았다. 만약 DUR을 이용하면 정부의 격리 대상에 빠져 있던 환자가 처음 방문하는 의료기관에서 체크돼 즉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DUR은 전국 8만5000개의 의료기관과 약국이 거의 다 깔아서 사용하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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