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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내부서도 “월권이자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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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의 ‘정부 시행령 수정권 부여’ 문제를 놓고 여권 내부에서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국회는 법률을 만들고 정부는 그 하위 법령인 시행령·시행규칙 등을 만든다. 국회가 정부가 만드는 시행령의 수정을 강제하는 권한을 갖게 하는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안에 청와대와 새누리당 친박계가 반발하면서다.

 28일 여야 합의소식이 전해졌지만 청와대에선 불만이 계속 흘러나왔다. 공무원연금 개정안 처리가 틀어지는 것을 우려해 공식 반응은 자제했지만 “국회가 시행령 수정 권한은 갖는 것은 월권이자 위헌”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문제의 합의사항은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행정 입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고 수정·변경을 요구받은 행정기관은 이를 지체 없이 처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대통령령 등이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 국회 상임위가 해당 행정기관장에게 그 내용을 통보할 수 있다’고만 돼 있는 현행 조항보다 대폭 강화된 내용이다.

 익명을 요청한 청와대 관계자는 “시행령을 만드는 권한은 정부에 있기 때문에 여야가 합의대로 시행령을 강제로 바꾸려 해도 이는 삼권분립 위배로 위헌 결정이 날 공산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게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임위에선 사사건건 청와대와 정부에 시행령을 바꾸라는 식으로 발목 잡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도 시행령 문제가 가장 큰 논쟁거리였다. 의총에서 유승민 원내대표 등 원내 지도부는 “법무부가 위헌이 아니라고 한다”며 추인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친박 의원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다. 검사 출신인 김재원·김진태·김도읍 의원 등은 “대통령령(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국회가 직접 ‘이 부분 잘못됐으니까 고쳐’라고 강제할 순 없다”며 “이 합의사항은 빼야 한다”고 반대했다.

 역시 검사 출신인 장윤석·권성동 의원은 “행정부에 대한 권한 침해는 아닌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결국 네 가지 여야 합의사항 가운데 이 사항만 문구 수정을 조건으로 추인을 받았다. 의총에 앞서 열린 새누리당 긴급 최고위에서도 친박계인 서청원·이정현 의원 등이 “위헌 소지의 우려가 있으니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자”고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논쟁이 계속되자 유 원내대표는 “야당과 다시 만나 ‘위헌 문제 등 이의 제기가 있을 때는 예외로 하겠다’는 문구를 추가해 접점을 찾아보겠다”고 물러섰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하지만 세월호법 시행령이 법률의 테두리 안에 있는데도 손을 대는 것이라면 논란의 소지는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명선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는 “국회가 대통령령을 수정하려는 시도 자체를 위헌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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