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업 임원이었는데 … ” 과거는 잊고 주민과 어울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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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말 부산의 한 회사에 다니던 김모(56)씨는 아내와 함께 경남 거창군의 한 마을로 귀농했다. 퇴직 전 귀농지원센터를 찾아 교육도 받고 정보도 챙기며 벼농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귀농한 지 6개월도 못돼 다시 부산으로 돌아갔다.

 마을 주민과 화합하고 소통하지 못한 게 주된 원인이었다. 김씨 부부는 오전 6시쯤 일어나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를 산책했다. 경운기를 몰고 일하러 나가던 주민들이 이런 모습을 달가워할 리 없었다. 결정적인 사건은 정월 대보름 때 일어났다. 주민들이 모두 모여 달집 태우기 행사를 준비하는데 이들 부부는 일손을 거들지 않고 춥다며 주위의 볏짚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다. 이 일로 주민들과 티격태격한 김씨는 이후 외톨이로 지내다 결국 마을을 떠났다.

 귀농·귀촌인들의 생활이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다. 억대 고소득을 올리는 성공사례 못지않게 농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역귀농’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부적응 원인 중 하나는 주민과의 갈등이다. 특히 최근 들어 대기업 간부 같은 귀농자가 증가하면서 동네 주민들과 다투는 모습이 드물지 않게 됐다. 서울에서 중소기업 임원을 지낸 이모(50)씨는 2011년 경북 영천으로 귀농해 복숭아 농사를 지었 지만 3년 뒤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한 주민은 “동네 회의에서 주민들이 얘기하면 ‘답답한 소리 한다’거나 ‘내가 과거에 어땠는데’라며 호통을 치곤 했다” 고 전했다. 이후 이씨는 동네 품앗이에서 자연스레 배제돼 홀로 복숭아를 키우다 결국 포기했다.

충북 충주시에 2013년 귀농해 마을 주민과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김명희(48·여)씨는 “귀농의 가장 큰 적은 ‘서울에서 왔으니 난 특별해’라는 우월감”이라며 “먼저 어르신께 인사드리고 밭일도 도우며 이웃이란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귀농했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잖다. 서울의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던 정모(57)씨는 2011년 퇴직을 앞두고 전남 광양시로 내려갔다. 아파트를 처분한 돈과 퇴직금을 합쳐 귀농자금 4억원을 마련해서였다. 하지만 사전 교육을 받지 않고 서둘러 귀농하다 보니 손대는 작물마다 실패를 맛봤다. 처음엔 “비파나무가 돈이 된다”는 지인 말에 솔깃해 선택했다 망한 뒤 매실과 양봉 까지 손을 댔지만 허사였다. 결국 모든 돈을 탕진하고 2억원 빚까지 지게 됐다.

 이미 정착한 귀농·귀촌인들도 이런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서울에서 충주시로 내려와 5년째 족동마을 이장을 맡고 있는 홍연옥(55)씨는 “전원생활을 꿈꾸며 억대 소득까지 바라는 건 환상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로움도 성공적인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농정연구센터가 지난 2월 귀농·귀촌인 7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어려움이 생겼을 때 누구와 상담하나’라는 질문에 “거의 없다”고 답한 비율이 21.1%나 됐다.

2010년 강원도 홍천군으로 귀농한 박인호(52)씨는 “쾌적한 환경에서 사는 만큼 벌면 좋고 조금 못 벌어도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게 마음의 고민을 줄이는 길”이라며 “마을 주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면 ‘무늬만 농부’ 처지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신홍(팀장)·송의호·황선윤·전익진·김방현·최경호·위성욱·김윤호·최충일·최종권·유명한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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