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도들, 사람·역사·경제에 더 관심 가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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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호암공학상 수상자인 김창진 UCLA 교수가 전기 자극으로 물방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미세유체 제어 기술을 이용한 ‘랩온어칩(Lab on a Chip)’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김동필 LA중앙일보 기자]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이 공학이라고 생각한다.”

 ‘미세유체 제어 기술’ 분야의 선구자로 꼽히는 김창진(57)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UCLA) 기계공학과 교수는 “공학은 발견 자체가 목적인 과학과는 다르다”며 공학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그만큼 본인의 연구 결과를 제품화하는 데도 관심이 많아 직접 창업을 해 다른 기업에 매각한 경험도 있다. 미세유체 제어 기술은 전기 자극을 이용해 액체의 습윤성과 표면장력을 쉽고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분야다. 올해 호암 공학상 수상도 이런 업적을 평가받았다. 김 교수는 “추천 사실도 몰랐는데 큰 상을 받아 영광스럽다”며 “그동안의 연구를 인정받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미세유체 제어 기술이란.

 “전기 신호를 이용해 물방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액체를 움직이려면 밸브·펌프·파이프 등이 필요하지만 이런 하드웨어 없이도 액체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드림웍스가 만든 ‘개미(Ant)’라는 영화를 보면 개미가 물방울에 갇혀 꼼짝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화영화지만 이는 사실이다. 개미가 물방울의 표면장력을 뚫고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마이크로 세계에서는 이처럼 들러붙는 성질이 더 강해진다. 그런데 전기 자극을 통해 이러한 액체의 습윤성과 표면장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떻게 활용 가능한가.

 “현재 마이크로종합분석시스템 분야가 가장 활발하다. 아직 연구가 더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화학이나 생물학 실험의 소형화와 단순화가 가능해졌다. 실험실 전체를 조그만 칩 위로 옮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미 상품화된 것도 있나.

 “바이오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지난 2월 샌디에고에 있는 일루미나라는 업체가 미세유체 제어 기술을 이용한 DNA 분석 장비를 선보였다. 또 전기 신호로 초점 조절이 가능한 소형 카메라 렌즈도 이미 상품화됐고 요즘 많이 사용되는 잉크젯 프린터에도 이 기술이 일부 적용됐다.”

 -기계공학이 전공 아닌가.

 “원래 미세기계 분야를 공부했다. 그냥 작은 정도가 아니라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크기를 말한다. 박사 학위도 단세포 생물을 집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기계 제작에 관한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집을 수는 있는데 이를 다시 놓거나 하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또 사용 후 세척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기계가 망가졌다. 액체의 표면장력 때문이었다. 물체의 크기가 작아진다고 해서 표면장력도 작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관심을 갖게 됐는데 관련 연구 자료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고 ‘연구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컸다.”

 -다른 연구도 진행 중인가.

 “나노 바늘구조 표면 연구다. 쉽게 말하면 특수 표면 처리를 통해 공기를 지속적으로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선박의 표면에 붙이면 물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 공기가 고체와 물의 윤활작용을 돕기 때문이다. 결국 선박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탄산가스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했는데 아직 직접 배를 만들어 해보지는 못했다. 올해 안에 샌타모니카 해안에서 최소 1m 이상의 배를 제작해 직접 실험을 해 보는 것이 목표다. 마이크로 스킬을 규모가 큰 것에 적용하는 것이라 기대가 크다.”

 1993년부터 UCLA 교수로 재직 중인 김 교수는 공학도들에게 더 많은 호기심을 주문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과 전공 외에 역사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김동필 LA중앙일보 기자 kim.dongpil@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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