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문화 하나로 엮는 대나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고 줄기에 마디가 있어 절조가 높고 겸허한 현자와 같다."(竹心空 竹節貞.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養竹記'중에서)

'대쪽같은 절개'를 흠모한 이가 어디 백거이 뿐이겠는가. 고대부터 현재까지 대나무는 한.중.일 3국에서 유난히 사랑받았다. 유교의 선비, 불교의 스님, 도교의 도사들이 다 좋아했음은 이 지역의 역사에서 대나무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을 상징한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국문학 교수의 대나무 사랑이 각별하다. 대나무를 동아시아 3국의 문화를 아우르는 평화의 전령으로 자리매기고 싶어한다. 그가 책임편집한 '대나무'(종이나라, 3만원)가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한.중.일은 '대나무 문화권'으로 묶인다. 3국의 역사에서 문학과 예술의 단골 소재로 쓰인 대나무의 역사를 비교해 가며 보여준다. 수많은 묵죽도(墨竹圖)와 도자기 등에 그려진 문양이 소개된다. 죽세공 민예품으로도 많이 사용됐고, 일본의 경우 대규모 대나무 축제가 현재까지 이어진다.

조선 중기의 문인 윤선도가 오우가(五友歌)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라고 읊은 대목을 이 교수는 눈여겨 봤다. 대나무는 과연 풀인가 나무인가.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면 소나무.매화나무와 한 식구가 되고, '사군자(四君子)'라 하면 난초.국화와 같은 풀과 한 식구"라며 "풀과 나무의 경계 속에 사는 그레이 존(회색지대)의 식물이란 점이 한자문화권에서의 대나무에 대한 감각"이라고 풀이했다. 붓.죽간(竹簡).붓통 같은 선비들의 문구로 쓰이면서 동시에 활.화살.죽창.죽도 등 무기로 쓰인다는 점에서 대나무는 문무의 경계도 붕괴시킨다. 이런 특징을 동아시아 3국의 정서 융합의 매개로 삼으려는 소망이 담겨 있는 해석이다.

2005년부터 펴내기 시작한'한.중.일 문화코드 읽기-비교문화 상징사전'시리즈의 3번째 책이다. '매화'와 '소나무'가 앞서 출간된 바 있다. '난초''국화'등 식물과 12간지에 나오는 동물에 관한 시리즈가 계속될 예정이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