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콜롬비아에서, 한국에서 … 6·25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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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맘브루
R H 모레노 두란 지음, 송병선 옮김,
문학동네452쪽, 1만5000원

엄마의 뜰
최일옥 지음, 그물
378쪽, 1만6000원

두 권 모두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이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소설 내용이나 스타일, 담고 있는 메시지가 사뭇 다르다.

 2005년 작고한 콜롬비아 작가 모레노 두란이 1996년에 세상에 내놓은 『맘브루』는 반전(反戰)주의 시각에 충실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공식 역사의 기록은 콜롬비아가 한국의 ‘혈맹’이라는 것이다. 중남미 국가로는 유일하게 1000명의 병력을 파견해 불모(不毛)고지 전투 등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지난달 남미를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이 콜롬비아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따로 만난 것은 그래서다.

『맘브루』의 저자 모레노 두란. [사진 문학동네]

 두란은 참전의 실상이 그런 겉모습과는 딴판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제시한다. 국제사회의 북한 응징에 호응했다기보다는 콜롬비아 국내 정치적 요소가 크게 작용해 참전했고, 병사들도 정예와는 거리가 먼 사회 낙오자 수준이 많았다는 얘기다. 넘치는 남성 호르몬을 주체 못하는 콜롬비아 병사들의 좌충우돌 행각은 전쟁의 후방 병참기지였던 일본에서의 극단적인 성적 방종 사건들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남미의 위대한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을 이어 받은 이 소설은 전쟁소설인데도 유머가 넘치고 활기차다. 모든 게 힘이 뻗쳐 벌어진 일 아니겠냐고 비꼬는 듯하다.

 공교롭게도 두란과 같은 46년에 태어난 소설가 최일옥씨의 작품은 액자소설 형식이다. 화가인 연아가 들려준 어머니 기연과 외할머니의 전쟁 체험을 친구 경미가 소설화한다. 그 액자 프레임 안에 박힌 소설의 알맹이는 일사천리 단순한 구조다. 대여섯 살 무렵 전쟁을 맞은 어린 기연의 가족이 외할아버지가 과거 독립운동을 한 덕에 전쟁통임에도 지원된 국군 트럭을 타고 수원에서 부산까지 피난가는 과정이 소설 뼈대다.

 최씨는 “실존 인물을 그대로 갖다 쓰기보다 토막토막 활용해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했지만 소설은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기연만큼은 최씨 자신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어린 기연의 시선으로 어른들의 전쟁을 바라보도록 한 소설의 설정은 기연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을 암시하는 대목에서 힘을 발휘한다. 독자들은 눈치챈 출생의 비밀을 기연은 모른다. 외할머니에서 연아까지 모녀 3대의 인생 스케치를 통해 최씨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소설 제목에서 비춘 것처럼 어떤 경우에도 힘이 되는 엄마의 넉넉한 품 같은 것일 게다.

 『맘브루』는 아버지가 참전용사였던 역사학자 주인공이 과거 아버지의 전우들을 수소문해 인터뷰하는 형식을 통해 전쟁의 실체에 접근하는 형식이다. 『엄마의 뜰』은 전쟁의 기억을 생생히 되살려 속도감 있게 읽히게 하는데 주력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두 작품의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전쟁은 끔찍하다는 것이다.

[S BOX] 허구일까, 사실일까 … 작가의 트릭

두란은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하는 이른바 포스트모던 계열 작가로 분류됐었다고 한다. 그런 특징은 『맘브루』에서도 보인다. 소설은 1987년 콜롬비아 비르힐리오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비행기에 소설의 화자인 역사학자 비나스코가 동승한다. 비르힐리오는 한국 방문 기간 중 복막염이 발병해 서울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런 일화가 소설에 고스란히 나온다. 사실의 촘촘한 뼈대 위에 허구를 슬쩍슬쩍 갖다 붙이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서부터 사실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 모호함은 인간 기억의 불확실성을 겨냥한 듯하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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