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시민이다] 골목길 쓰레기 투기 막으니 … 절도범죄 3분의 1로 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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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쓰레기 투기를 제보해 범죄율까지 낮춘 대림2동 통장들과 파출소 직원들이 손으로 시민을 뜻하는 사람 인(人)자를 그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클린존이 생기기 전 쓰레기가 골목길에 버려지곤 했다. [김성룡 기자]

“쓰레기 불법 투기 신고에 그치지 않고 자기 집 앞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쓰레기를 직접 치워요. 그냥 지나가도 되는데….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서울 영등포구 대림2동 4통장 최금미(42)씨는 요즘 ‘단체 카톡방’에 푹 빠져 지낸다. 대림2동 통장 29명과 대림2파출소 직원들, 영등포 구의원들, 주민 등이 만든 단체 대화방인데 여기서 매일 ‘온라인 반상회’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부임한 최승천(55) 대림파출소장이 주민센터에서 열린 통장회의에 참석해 온라인 모임을 제안한 게 결실을 맺은 것이다.

 최 소장은 당시 “‘깨진 유리창 이론’에 나오는 것처럼 더러운 골목이 범죄 분위기를 조성하는 원인일 수 있다”며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쓰레기 투기지역 제보를 받아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통장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마을주민 카톡방에 모인 지역 통장들은 동네를 돌며 쓰레기가 보일 때마다 “2통장입니다. 시흥대로 175길 12-2 쓰레기 투기 심각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현장 사진도 찍어 전송했다. 경찰은 즉시 출동해 쓰레기를 치우고 현행범을 잡았다. 또 제보가 잦은 지역을 ‘클린존(Clean Zone)’으로 지정하고 오전·오후 반복해 순찰했다. 쓰레기 집중 투기지역에 주민과 경찰이 힘을 합쳐 ‘쓰레기 투기 금지’ 팻말도 설치했다. 주민 대부분이 중국 동포라는 점을 고려해 팻말에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지 마시오’라는 한글과 중국어를 나란히 써 모두가 읽을 수 있게 했다.

 팻말 제작에 참여한 중국 동포 남명자(57)씨는 “팻말에 있는 중국어를 내가 썼다”며 “마을 살리기에 참여하다 보니 주인이 된 것 같고 애정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하루 2~3건씩 현장에서 적발되던 불법 쓰레기 투기는 단속 석 달 만에 일주일에 한 건으로 줄었다. 그러자 예기치 않은 효과가 나타났다. 지난해 3~5월 29건이던 대림2동의 침입 절도 건수가 올해 같은 기간 10건으로 줄어든 것이다. 최 소장은 “쓰레기봉투가 널브러져 있으면 절도범들은 순찰구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쉽게 범죄를 저지른다”며 “골목이 깨끗하고 경찰이 밤낮으로 순찰하니 범죄가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만족감이 커지면서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꽃집을 운영하는 정해이(60)씨는 “이전엔 골목에 쓰레기 던지는 걸 봐도 해코지당할까 봐 말 못했는데 이젠 사명감이 생겨서 즉각 신고한다”고 했다. 이민경(46)씨는 “‘우리 집 털렸다’며 수군대는 소리가 많은 동네였는데 그런 말이 확 줄었다”며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금미 통장은 “경찰과 심적으로 가까워지고 동네에 대한 애정이 늘어나니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치우는 주민도 늘고 있다. 마숙란(57) 영등포구 의원은 “과거에는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는데 소통이 활발하다 보니 주민 간 연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마 의원은 “직접 쓰레기를 치우는 시민들도 생기고 신고정신도 높아지는 등 시민의식이 성숙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웃 동네로도 변화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 최 소장은 “3일 전 대림1동 주민회의에서 왜 우리는 단체 카톡방을 안 만들어 주느냐는 의견이 나왔다”며 “파출소 근무 인원 조정을 통해 대림1동에서도 단체 카톡방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지하철의 깨진 유리창처럼 가벼운 범죄를 방치하면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사회범죄심리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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