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인 나도 전경 아들 보니 폭력은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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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평화적인 시위문화 정착을 외치는 300여 명의 전.의경 부모들 중 김모(49)씨는 유달리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경북 경주시에서 올라온 철도청 직원이자 농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전에는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했지만 지난해 2월 아들이 전경이 된 뒤로는 폭력 시위 참가를 말리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인터넷 카페 '전.의경 부모의 모임'의 회원. 그는 "지난봄 아들이 울산 플랜트 노조의 시위 진압에 동원됐는데 당시 노조원들이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을 보고 놀라 전.의경 부모 모임에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활동하는 카페는 지난해 5월에 만들어져 현재 3000여 명이 회원으로 동록해 있다. 이 모임 외에도 '전.의경 우리 고운 아들들'등 전.의경 부모들이 시위 문화 개선을 촉구하는 뜻으로 만든 3~4개의 인터넷 카페가 있다.

가두 행진에도 참가한 김씨는 몇몇 전.의경 부모들이 들고 있는 '쇠파이프는 합법이고 진압봉은 불법이냐'고 적힌 피켓을 가리키며 "내가 생각해낸 문구"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는 시위 진압 도중 부상해 전역 뒤에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의경 전역자 최모(27)씨도 참석해 시위 폭력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2001년 11월 제대를 한 달 앞두고 연세대에서 한총련.민주노총 등이 주최한 시위를 막다 날아온 돌에 맞아 이마가 3㎝ 찢어지고 피를 흘리며 기절했어요. 종갓집 장손인 아들의 부상 소식에 어머니도 충격으로 쓰러졌습니다."

최씨는 "당시 경찰병원에 실려가 뇌진탕 판정을 받았고 제대 뒤 1년 반 동안 통원 치료도 받았지만 아직도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몸무게가 20㎏ 이상 빠졌다"고 했다.

"진압 대원이 죽창에 눈이 찔려 실명하거나 배에서 피를 흘리는 광경도 봤다"는 최씨는 "전.의경의 인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해 여기 왔다"고 했다. "전.의경이 폭력 집단으로 매도당하는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때로 든다"고 덧붙였다.

백일현.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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