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목요일] 식품첨가물은 무죄 “첨가물 없다” 마케팅이 유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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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동작구의 한 대형 마트에서 주부 박미영(35)씨는 9세, 7세 된 두 아들에게 먹일 어묵 제품을 고르고 있었다. 박씨는 “아이들이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는데, 식품첨가물이 증세를 악화시킨다고 들었다”며 “그러다 보니 가공식품을 고를 때면 ‘무첨가’라고 쓰여 있는 제품에 손이 간다”고 말했다.

 주부들의 기피 대상이 된 식품첨가물은 가공식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식품의 보존 기간을 늘려 주고 색·맛·향을 더 좋게 하기 위해 넣는 합성·천연첨가물을 말한다. 몇 년 사이 식품업계에선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았다고 광고하는 ‘무첨가 마케팅’이 대세다.

 처음 무첨가 마케팅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새로 시장에 진입하는 후발 주자가 쓰는 일종의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우리 제품엔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다고 광고하면 기존 제품은 몸에 안 좋은 제품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최근엔 식품업체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 전략을 활용한다. 제품 포장 앞면에 큰 글씨로 ‘무첨가’라고 표기하고 그래서 ‘건강하다’거나 ‘안심’이라는 미사여구를 붙인다. 몇 가지 첨가물만 빼놓고 마치 아무런 첨가물도 넣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무첨가 마케팅이 활용된다. 미국의 유명 베이커리 체인점인 ‘파네라 브레드’의 최고경영자(CEO) 론 샤이치는 지난 4일 “2016년까지 방부제·인공감미료 등 150여 가지 식품첨가물을 우리 제품에서 제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당신이 발음하기 힘든 성분이라면 음식에 들어가선 안 된다. 내 딸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제품만 고객들에게 제공하겠다는 의지”라며 식품첨가물의 위해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들은 “파네라의 ‘첨가물 프리(free)’ 정책은 다른 업체를 견제하려는 마케팅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식품첨가물은 무첨가 마케팅을 하는 식품업체들의 주장처럼 유해할까.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강석연 식품소비안전과장은 “시판되는 식품에 들어간 첨가물은 장기간의 정밀한 평가 과정을 거쳐 안전하다고 입증된 것”이라며 “몸에 해롭지도 않은 걸 ‘무첨가’라고 하는 건 소비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 주는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말했다. MSG·카세인나트륨 등 특정 첨가물 앞에 ‘무첨가’를 붙여 제품 광고 전면에 내세우면서 마치 해당 첨가물이 ‘나쁜 것’이라는 오해를 심어 준다는 것. 무첨가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선택 혼란과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식약처 강 과장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식품첨가물을 섭취할 경우를 가정해 기준치를 정하기 때문에 안심해도 좋다”고 말했다. 식품전문가인 서울교대 김정원(생활과학교육과) 교수도 “식약처의 첨가물 기준이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엄격한 편”이라며 “가공식품에 들어 있는 당·나트륨·포화지방·트랜스지방 섭취 때문에 만성질환에 걸릴 수는 있어도 식품첨가물 자체가 병을 부르지는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정 걱정이 된다면 무첨가라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라벨에 표기된 첨가물을 꼼꼼히 따져 보고 고르면 된다”고 덧붙였다. 인제대 백병원 강재헌(가정의학과) 교수는 “시판되는 식품에 들어 있는 첨가물은 안전성이 입증된 것이니 겁먹을 필요 없다”며 “뭐든 과하면 탈인 만큼 식품을 고를 때 식품 라벨에 쓰여 있는 식품첨가물을 확인하고 하루에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하지 않으면 된다”고 조언했다.

 그럼에도 국내 소비자들은 식품첨가물을 두려워한다. 2013년 식약처가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식품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물었더니 1위로 식품첨가물(34.5%)이 꼽혔다. 미국·일본에서 같은 조사를 했을 때 ‘유해 미생물에 의한 식중독’이 1위로 나온 것과 대비된다. 동국대 이광근(식품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식품첨가물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식품첨가물은 식중독 등 심각한 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넣는 것인데 무조건 나쁘게만 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무분별하게 무첨가 마케팅을 벌인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식품업체의 무첨가 마케팅은 결국 식품업계 전반에 제 살 깎아먹기와 같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2010년 커피믹스 카세인나트륨 파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양유업은 커피믹스 제품을 처음 출시하면서 ‘카세인나트륨 대신 우유를 넣은 커피’라는 점을 내세웠다. 당시 대다수 커피믹스 제품에 식품첨가물인 카세인나트륨이 첨가돼 있었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소비자들에게 카세인나트륨이 몸에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남양유업 제품은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점유율이 출시 1년 만에 12.5%까지 뛰어올랐다. 하지만 해마다 성장을 거듭하던 커피믹스 시장은 이때를 기점으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불안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커피믹스 대신 다른 제품으로 옮겨 갔기 때문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이후 카세인나트륨이 첨가물이란 점이 알려졌지만 한번 쪼그라든 시장은 커지지 않았다.

 무첨가 마케팅을 억제하려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한국식품산업협회는 지난 13일 무첨가 마케팅을 자제하자는 결의를 했다. 식약처도 무분별한 ‘무첨가 마케팅’이 빚는 소비자의 오해·불안을 막고 정확한 식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식품 표시 기준 변경을 추진한다. 7월부터 식품 포장 앞면에 ‘무첨가’ 표기를 하려면 식약처의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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