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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미국의 침몰은 시간문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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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이 망하면 전 세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마이크로소프트가 중국 기업에 넘어가고,
보잉은 유럽 에어버스에 인수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본부를 미국 워싱턴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옮긴다. 유럽연합(EU) 경제는 미국 경제의 배로 커진다.

금융자본주의 심장에 비유되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20세기 세계경제를 주름잡았던 미국 경제의 위기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부와 권력의 대이동
(원제 Three Billion New Capitalists)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 지음
이문희 옮김, 지식의숲, 535쪽, 1만9800원

미국의 추락은 달러화의 하락으로 시작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맞을 때 원.달러 환율이 800원대에서 순식간에 2000원까지 올라가면서 원화 가치가 낮아진 것과 같은 모양새다. 2009년 2월21일 일본과 중국 정부가 달러를 팔기 시작하면서 엔.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100엔에서 85엔으로 떨어진다. 1년 뒤 엔.달러 환율은 50엔으로 가라앉는다. 현재 엔.달러 환율은 115엔 수준이다.

이 책은 이처럼 비극적인 미래 시나리오로 시작한다. 미국의 비극의 원인은 간단하다. 빚만 잔뜩 짊어진 채 국가경쟁력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이 3조 달러의 빚을 떠안고 있는 세계 최대 채무국이고 한해 무역적자가 6000억 달러를 넘는 부실국가라는 것은 새로울 게 없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이 빙산을 향해 질주하는 타이타닉호나 다름없는 상태라고 주장한다. 지금 미국의 상황은 80년대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던 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와 다른 이유로 30억 신(新)경제인이 등장한다. 중국과 인도, 옛 소련의 30억 인구가 자본주의와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 가세하면서 미국의 취약한 풍선이 터지기 직전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에 제조업 공장을 빼앗긴 데 이어, 인도의 고급 인력에 서비스산업을 넘겨주고 있다는 것. 여기에 인터넷과 신속한 물류가 덧붙여져 미국의 일자리 수천만 개가 사라지고 있다고 탄식한다. 또 미국 정부와 미국인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걱정할 게 없다는 듯 흥청망청 낭비하고 있다고 질타한다.

저자는 미국의 장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산업정책을 세우자고 제안한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상무부 자문위원으로서 대외 무역 및 통상협상을 담당했던 경력다운 해법이다. 그는 자유무역.아웃소싱 등을 국가 이익 차원에서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인은 개별 기업의 이익만 생각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 전략'을 짜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과 일본, 심지어 한국까지도 이런 전략 아래 움직이고 있는데, 미국만 어설픈 자유무역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다고 말한다.

특히 핵심 기술이 있는 핵심 기업을 반드시 미국 내에 확보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소비억제, 연금 개혁, 교육 혁신, 에너지 절약 등의 필요성도 나열하지만, 미국의 산업보호를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이를 게을리하면 부와 권력이 동쪽으로, 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고 경고하기 위해 제목을 '부와 권력의 대이동'(원서에는 부제)이라고 한 것 같다. 지극히 미국 중심적인 시각에서 쓰인 책이다. 그러나 미국의 문제점 중 상당 부분이 우리 현실과 겹쳐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사례와 통계를 종횡으로 엮어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실감나게 서술해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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