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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어벤져스2’에 서울이 멋지게 안 나왔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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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형준
㈜한맥문화 대표

지난해 4월 서울의 마포·청담대교, 강남대로, 상암동 DMC 지역은 한 영화의 촬영현장을 구경하기 위한 군중으로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 영화는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첫 번째 서울 상륙작전은 성공적으로 치러진 듯했다.

 1년 후 ‘어벤져스2’는 화려하게 돌아왔다. 개봉 전부터 97%에 육박하는 역대 최고 예매율을 기록하더니 역대 외화 최고 관객수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 쉽사리 깨지지 않던 2010년 ‘아바타’의 흥행속도를 따라 잡을 정도의 ‘퀵실버’(어벤져스2에 등장하는 새로운 캐릭터)급 초스피드다.

 이러한 흥행 돌풍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어벤져스2’에 출연하는 캐릭터들의 이름값을 꼽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이 영화 속에 서울이 나온다는 영화 같은 현실이다. 이 영화를 본 많은 한국 관객 중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아이언맨 역할)가 서울에 있는 닥터 조(수현)에게 연락해 보라는 대사에 움찔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흥행 돌풍과 더불어 ‘어벤져스2’는 정부가 발표했던 관광효과와 로케이션 인센티브 지원 사업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많은 사람이 포털에서 동유럽의 가상국가인 ‘소코비아’를 검색해봤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각 세계 각지에선 ‘쎄울’을 검색하고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서울을 알리는 PPL(영화·드라마 속 간접광고)이 있을까. 어떤 이는 허름한 서울의 이미지와 알록달록한 간판만 보여줘 실망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 속 뉴욕도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의 초고층 빌딩 숲의 이미지로만 등장하지 않는다.개인적으로는 히스패닉계가 운전하는 노란 택시와 브루클린의 허름한 뒷골목, 덜컹거리는 쇳소리를 내는 낡은 지하철도 떠오른다. 허름한 뒷골목과 알록달록한 간판도 우리 서울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일각에선 서울의 모습도 멋지게 안 나왔는데 로케이션 인센티브라는 제도로 돈까지 주느냐고 불평한다. 하지만 많은 국가에서 해외 영상물의 촬영 유치로 인한 자국의 경제효과를 노려 로케이션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자국에서 지출한 제작비에 대해 일정 비율을 환급해 주는 인센티브 방식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쉽게 말해 외국 나가서 쇼핑하고 공항에서 세금을 돌려받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나라의 인센티브 제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관광 효과는 신경 쓰지 않고 자국에서 지출한 비용에만 관심을 둔다. 일례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체코 촬영 때 체코 정부로부터 약 35억원 정도의 인센티브를 환급받았다. ‘설국열차’ 속에서 체코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캐나다가 배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캐나다로부터 90여억원을 환급받은 애니메이션 ‘넛잡’도 같은 사례다.

 ‘어벤져스2’ 팀이 중국 역대 외화 사상 최대 수익을 올린 ‘트랜스포머4’의 중국행을 따라 하지 않고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같은 거창한 랜드마크도 없고, 세계영화시장 5위 안에도 들지 못하는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2억5000만 달러 제작비의 2%도 안 되는 30여억원의 지원금이 아쉬워서 왔을까. ‘어벤져스2’의 조스 웨던 감독은 유전공학이 발달한 국가이자 첨단 도시의 이미지를 가진 점을 들었다. 이번에 얻은 가장 큰 효과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 변신일 것이다.

 수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때 민방위훈련 사이렌을 듣고 전쟁이 난 줄 알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외국인들이 생각난다. 이렇듯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는 항상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나라로 인식돼 왔다. 그 이미지가 관광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외국인들에겐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러 왔다는 점만으로도 한국이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 국가 이미지 변신에 30여억원과 며칠간의 불편이 아까운 것일까.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지난해 4월 말에는 한국의 명소를 배경으로 미국의 신인모델들이 경쟁을 벌이는 ‘America’s Next Top Model’(미국 차세대모델 시즌21)이 광화문·서울시청 등지에서 촬영을 마치고 미국에서 방영이 됐다. 미국 넷플릭스의 드라마 ‘센스 8’을 비롯한 유수의 작품들이 한국을 촬영지로 선택하고 있다.

 ‘어벤져스2’가 불과 몇 주 만에 쓰고 간 130여억원은 수백 명 국내 스태프의 고용 창출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경제효과를 줬다. 부차적인 관광과 이미지 개선 효과는 농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과실로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단기적인 성과 달성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지원책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머지않아 뉴욕이 아닌 서울 강남 테헤란로 빌딩숲 사이로 스파이더맨이 날아다니는 모습과 홍대를 배경으로 한 ‘비긴 어게인(Begin Again)’ 속편을 영화관에서 관람할 날을 기대해 본다.

김형준 ㈜한맥문화 대표